Macaron
2.토요일 저녁의 번화가는 수많은 불빛들로 물들어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세로로 긴 불빛, 가로로 긴 불빛, 시시각각 색을 바꾸는 불빛, 동그란 빛을 빙 두르고 있는 불빛이 늘어선 거리는 한밤중이라도 대낮처럼 환했다. 빛나는 간판들이 쭉 이어지는 길을 걷던 두 사람은 빨간 일본식 등이 문 앞을 장식하고 있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이! 오이카와, 카게야마! 여기야!” 조금 어둑한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이와이즈미가 반갑게 손을 흔들며 그들을 불렀다. “오랜만입니다, 이와이즈미상. 많이 기다리셨습니까?”“아니 나도 방금 왔어. 그동안 잘 지냈냐? 오이카와 녀석이 괴롭히지는 않든?”“안 괴롭히거든?!”“일단 간단하게 맥주랑 연두부 시켜놨으니 곧 올 거야. 거기 메뉴판 보고 더 먹고 싶은 거 더 시..
1. “오이카와상, 이와이즈미상은 잘 만나고 오셨습니까?”“있지, 내 말 좀 들어봐~ 나 엄~청 맞을 뻔했어!”“맞을만한 짓을 하셨나보군요.”“…토비오쨩은 누구 애인이에요?”“그야 물론 오이카와상의 애인입니다!”“대답은 잘해요. 대답은.” 오이카와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툴툴대자 카게야마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이카와상 삐치셨습니까?”“내가 삐쳐? 왜애애? 토비오쨩이 애인인 오이카와상 대신 이와쨩 편만 들어서어?”“딱히 편든 건 아니었는데……….”“그렇겠지! 딱히 편든 건 아니겠지! 오이카와상은 언제나 이와쨩한테 맞을 짓이나 하고 다니는 어린애 같은 인간이네요!”“그,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그래, 그래. 그러시겠지. 흥!” 오이카와가 이마에 ‘나 토라졌음’을 잔뜩 써 붙인 듯한 얼굴로 소..
- 휴대전화를 귀에 댄 채로 전철에서 내리던 이와이즈미는 후덥지근한 공기에 끙하는 신음을 냈다. 여름이 다가와 있었고, 도쿄는 미야기보다 조금 더 덥고, 조금 더 많이 분주했다. 평일인데도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꺼풀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사람들과는 대조적으로 느릿하게 깜빡였다. 그러나 그도 잠깐, 휴대전화 너머로 들리는 말소리에 대답 하며 걷고 있으려니 누군가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이와쨩! 여기야 여기!”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커다랗고 새카만 선글라스를 끼고 있는 장신의 남자가 요란하게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좀 있다 다시 연락할게.” 통화 중이던 이와이즈미는 사내의 곱슬한 갈색 머리칼을 보자마자 반색을 표하며 작은 캐리어를 끌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저 진짜 괜찮아요.” “정류장에서 내려드릴게요. 버스 타고 가시면 될 거예요. 정말 미안합니다.” 오이카와는 마지막까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런 곳에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상대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 뒤 차문을 열고 나왔다.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소나기였다. 버스는 언제쯤 오려나. 오이카와는 아무도 없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왼쪽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생각했다. 눅눅한 건 싫지만 비가 와서 다행이야. 뉴스에선 몇 십 년만의 폭염이라느니 열대야라느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는 둥의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오늘의 최고 기온은 몇 도, 불쾌지수는 몇 퍼센트, 식탁 위에 뒀다가 진득하게 녹아버린 ..
※주의사항- 약 고어 묘사가 있습니다.- 윤간 암시 장면 있습니다.- 대부분의 등장인물이 죽거나 미칩니다.- 미래조작 요소 있습니다.- 히카게, 모브카게 요소 있습니다. 길어서 일 별로 나눠서 접어두었습니다. 1일째 ‖ AM 06:00 자명종이 세 번을 채 울리기도 전에 카게야마는 눈을 떴다. 창문 너머로 어슴푸레하게 동이 트고 있었다. 카게야마는 자명종의 알람을 끄고 옷을 갈아입었다. 책상 위에 어제 어머니가 사주신 손목시계가 놓여있었다. 어제 어머니를 따라 영화를 보러 백화점에 갔다가 진열장에서 우연히 본 시계였다. 공학계산기로도 유명한 회사에서 만들었다고 하는 그 시계는 꼭 공대생들의 계산기처럼 투박한 디자인의 검은색 시계였으나,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 안쪽 부분만큼은 제법 세련된 데다 날짜까지 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