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caron

[오이카게] 경기G버스 본문

HQ!/조각글

[오이카게] 경기G버스

SaKuya! 2015. 10. 25. 15:26



거 미안해서 어쩌죠?”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정말 미안합니다.”

아니에요. 저 진짜 괜찮아요.”

정류장에서 내려드릴게요. 버스 타고 가시면 될 거예요. 정말 미안합니다.”


오이카와는 마지막까지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런 곳에 두고 가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상대에게 웃으며 괜찮다고 말한 뒤 차문을 열고 나왔다. 눅눅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다. 소나기였다.


버스는 언제쯤 오려나.


오이카와는 아무도 없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왼쪽 다리를 앞뒤로 흔들며 생각했다. 눅눅한 건 싫지만 비가 와서 다행이야.


뉴스에선 몇 십 년만의 폭염이라느니 열대야라느니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었다는 둥의 소식이 끊이질 않았다. 오늘의 최고 기온은 몇 도, 불쾌지수는 몇 퍼센트, 식탁 위에 뒀다가 진득하게 녹아버린 초콜릿 같은 걸 생각하던 그의 다리가 흔들리는 걸 멈췄다.


눅눅한 건 싫지만, 그래도 비가 와서 다행이야.”


TV뉴스의 아나운서들 말대로 요즘은 너무 더웠다. 에어컨을 틀어놓지 않으면 금세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더워 죽겠는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먹는 것도 그랬다. 한국 음식은 어때? 너무 맵지 않아? 친구들이 그렇게 물어보면 그는 항상 맵다고 맞장구를 쳤다. 그러나 아예 먹을 게 없는 건 또 아니었다. 맵지 않은 음식을 골라 먹거나, 근처 일식집을 가거나, 빵을 사다먹으면 되는 일이었다. 다른 나라까지 와서 일하는 것도, 썩 좋아하지 않는 술자리에 불려나가는 것도 힘들긴 했으나, 술을 마시고 난 뒤엔 술을 하지 않은 동료들이 취한 동료들을 위해 대리운전을 불러주거나 자신의 차로 집 근처까지 데려다주곤 했다. 그게 여의치 않을 때엔 이렇게 정류장 앞에 내려주거나.


그냥저냥 살만한 일상이었다. 더군다나 오늘은 소나기까지 와서 그렇게 덥지도 않았다. 딱 그냥저냥 괜찮았다.


버스는 거센 빗방울 속에서도 헤드라이트를 켜고 정류장으로 착실하게 달려오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자리에서 일어나 저 멀리서 오고 있는 버스를 확인했다. 자신이 타야할 버스는 아니었다. 오이카와는 다시 벤치에 앉았다. 좀 더 기다려야할 때였다.

누군가 여기서 내리겠다고 했는지, 버스는 오이카와가 앉아있는 정류장 앞에 멈춰 섰다. 그리고 버스에서 내려 소나기 속을 뚫고 후다닥 정류장 지붕 밑으로 달려온 남자는, 설마 이런 곳에서 만날 거라곤 예상치도 못한 사람이었다.


토비오쨩?”


그건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카게야마는 새카만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눈만 깜빡였다.


오이카와상?”

토비오쨩이 왜 이런 곳에 있어?”

오이카와상이야말로 왜 한국에 계십니까?”

한국으로 발령 나서.”


오이카와의 간결한 설명에 카게야마는 이해했다는 듯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이카와가 배구를 그만두고 대학을 졸업한 뒤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고 있다는 건 카게야마도 다른 사람들에게 들어 알고 있을 터였다.


그래서 토비오쨩은 왜 여기 있는 거야?”

가야할 곳이 있어서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원래는 좀 더 빨리 오려고 했는데 훈련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카게야마는 길 너머를 힐끗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우산이 없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며 그가 말했던 단어를 입 안에서 굴려보았다. ‘훈련.’ 오이카와에겐 너무 멀어진 단어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정류장 밖으로 나가려는 카게야마를 충동적으로 불러 세웠다.


토비오쨩 우산 없지 않아?”

. 뛰어가야죠.”

가야한다는 곳이 여기서 가까운 곳이야?”

뛰어가면 10분정도 걸리지 않을까요.”


소나기가 정류장 지붕을 거칠게 때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감기 걸리면 어쩌려고?”


오이카와는 하긴, 토비오쨩은 바보라서 감기도 안 걸리겠지? 라는 장난스런 말을 덧붙이려다말고 그냥 입을 닫았다. 아직도 그런 장난을 쳐도 괜찮을지를 몰라서였다.


몇 년전쯤만 해도 항상 토비오를 놀려먹었던 것 같은데.


어쩔 수 없죠.”

다른 사람한테 데리러 오라고 하는 건?”

그건 좀 힘들어서요.”


오이카와는 제 3단 우산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그럼 내가 데려다줄게.”

그러지 않으셔도

운동선수한테는 감기도 큰 병이야.”


항상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둬야지. 오이카와가 나지막하게 한 말을 들었는지 카게야마는 감사하다며 고개를 또 꾸벅 숙였다. 감사를 표할 때도, 선배에게 인사를 할 때도 고개를 꾸벅 숙이는 체육계 특유의 인사법도 오이카와에겐 이제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오이카와는 우산을 펼쳤다. 아무런 무늬도 없는 밋밋한 군청색 우산이었다.

그의 작은 3단 우산은 성인 남성 둘이서 쓰기엔 턱없이 작았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눈치 채지 못하게 우산을 조금씩 카게야마 쪽으로 옮겼다. 그 바람에 무방비해진 오이카와의 왼쪽 어깨 위로 빗줄기들이 떨어져 내리며, 그의 어깨를 적셨다.

어깨 위로 내리는 빗방울들이 왠지 자신을 칭찬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에, 오이카와는 가는 길 내내 우산을 조금 치우치게 들고 걸었다.

 

* * *

 

여기예요.”


카게야마가 걸음을 멈춘 건 어느 파란 대문 앞이었다. 안쪽에선 개 짖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카게야마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대문을 여는 동안, 오이카와는 주변을 둘러봤다. 1층짜리 주택들 앞뒤로 나무들이 빽빽하게 심어져있었다. 과수원인 것 같았다.


오이카와상도 들어오세요. 음료수라도 드릴게요.”

아니, 난 이만 가볼게.”

배구야, 조용히 해. 잠깐만 들어왔다 가세요. 냉장고에 녹차 있어요.”


파란 대문 안쪽 마당에서 꼬리를 흔들며 짖어대는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다.


쟤 이름이 배구야?”


카게야마가 대문을 조금 더 열자 오이카와는 꼭 뭔가에 홀린 사람처럼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배구라는 말을 들은 강아지가 

!”하고 짖었다.


원래 이름은 백구인데 발음이 어려워서 그냥 배구라고 부르고 있어요.”


카게야마의 비 오니까 집에 들어가라는 말에 꼬리를 흔들며 개집 안으로 들어가는 흰 강아지를 보며 오이카와는 아쉬운 얼굴로 작게 백구, 배구하고 중얼거렸다. 한국말은 아직 서툴러서 백구는 무슨 뜻인지 잘 모르지만, ‘배구라는 단어만큼은 알고 있었다.


토비오 왔니?”

할머니, 굳이 나오실 필요 없다니까요.”


카게야마는 현관문을 열고 나온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제가 알아서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데.”

그래도 우리 토비오가 왔으면 나가봐야지. 근데 저 총각은?”


오이카와는 자신도 모르게 카게야마처럼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했다.


오이카와 토오루입니다. 토비아니 카게야마의 중학교 선배예요.”


중학교 선배. 이젠 정말 딱 그 정도의 관계였다.

오이카와는 조금 착잡한 기분을 느끼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이런 인사는 몇 년 만에 하는 거라 어색했다.


집에서 나온 노부인은 눈처럼 새하얗게 센 머리카락을 비녀로 틀어 올리고 있었는데, 그게 꼭 옛날이야기 속에 나오는 신령님 같았다. 길을 잃고 산을 헤매고 있으면 강에서 나와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하얀 연기로 사라지는 신령님.


아니 중학교 선배를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났대? 어서 들어와요. 반가워요.”

아뇨, 전 이만.”

그러지 말고 들어와요. 토비오가 누굴 데려오는 건 처음이라 그래.”


할머니는 오이카와의 손을 잡고 꼭 손자에게 하는 것처럼 그 손을 쓰다듬었다. 주름이 가득한 그 작은 손이 왠지 따뜻하게 느껴져서 오이카와는 도저히 거절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잠깐만 실례하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오이카와는 눈을 찌푸렸다. 어두운 곳에 너무 오래 있어서 조명이 눈부셨다.


아이고 총각 왜 어깨가 다 젖었어.”


오이카와의 젖은 왼쪽 어깨를 본 할머니는 부산을 떨며 화장실에서 수건을 꺼내왔다. 오이카와는 그 수건을 받기 위해 팔을 들었으나, 그녀는 어미 새가 새끼 새의 깃털을 정리해주는 것 같은 다정한 손길로 그의 어깨를 직접 닦아주었다.


감사합니다.”

근데 토비오는 안 젖었던데 총각 어깨는 왜 이리 젖었어요?”


집이 그리 크지 않았기에 오이카와는 부엌에서 녹차를 컵에 따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볼 수 있었다. 소나기가 내리긴 했지만 밖은 아직 후덥지근했다. 카게야마는 컵 안에 얼음을 넣고 있었다.


제가 원래 우산을 좀 삐딱하게 써서 그래요.”


카게야마가 쟁반 위에 컵을 올려놓고 오고 있었기에 오이카와는 별 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오이카와상, 녹차 드세요.”

고마워.”


오이카와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할머니의 시선을 피하며 녹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얼음을 띄운 녹차는 머리가 띵해질 정도로 시원했다.


잘 마셨어. 난 이제 가볼게. 할머니, 안녕히 계세요.”


그는 쟁반 위에 다시 컵을 올려놓고 할머니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늦었는데 자고 가지 그래요. 지금 가면 버스도 없을 텐데

지금 가면 막차는 탈 수 있을 테니 괜찮아요. 그거 타고 역까지 가서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한 본 오이카와는 아차 하며 입을 다물었다. 지금 버스를 타고 역까지 간다고 해도 지하철은 끊겨있을 시간이었다. 어쩌지? 택시는 야간할증 붙어서 비쌀 텐데.


지금 역까지 가봤자 지하철도 끊겼을 텐데 자고 가요.”


할머니가 붙잡자 오이카와는 고민하고 망설이던 오이카와는 이내 주먹을 꾹 쥐며 입을 열었다.


그럼 죄송하지만 오늘 밤만 신세 좀 지겠습니다.”

 

* * *

 

소나기가 그쳤다. 서울에서 많이 떨어진 곳도 아니건만 새벽이 되자 밖에서 풀벌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고향에 있을 땐 밤마다 자주 들었지만 서울로 온 후론 거의 듣지 못했던 소리였다. 오이카와는 쉬이 잠들지 못하고 새벽 특유의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와 풀벌레 소리를 크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들리는 고른 숨소리.


오이카와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카게야마가 쌔근쌔근 자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토비오쨩 자는 모습은 중학교 때랑 똑같네.”


오이카와는 중학교 때, 카게야마도 함께 했던 합숙을 떠올렸다. 그도 아직 배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많은 것이 변했지만, 카게야마는 그때와 변함없이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고 있었다.


합숙 마지막 날 시합에서 졌었는데.”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렸다.

하필이면 그날, 돌아오는 버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카게야마였다. 어린 날의 그는 버스 안에서 입술을 깨물었었다. 시합에서 진 게 분했다.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하필이면 천재인 것도 싫었다.


내 바로 뒤로도 모자라 이제는 바로 옆이야?


잔뜩 화가 난 그가 얄미운 후배에게 화풀이를 하기 위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입술을 깨문 바로 그 순간, 어깨에 따뜻한 게 닿았다. 카게야마가 자신에게 기대 졸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잠시 주먹을 꾹 쥐었다가 이내 손에서 힘을 풀었다. 작고 따뜻한 존재가 자신의 어깨 위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그는 버스가 크게 덜컹 거릴 때마다 카게야마가 깨지는 않을지 가슴을 졸이며 가는 내내 허리를 편 채로 앉아있었다.

 


 

옆방에서 할머니가 잔기침을 하고 있었다. 배구를 하던 시절을 떠올릴 때면 오이카와는 가슴 속으로 마른 잔기침을 하곤 했다. 그러나 오늘밤엔 신기하게도 가슴이 답답하지 않았다.

 

* * *

 

오이카와상, 일어나세요.”

으음10, 아니 5분만 더.”

일어나서 아침 드셔야죠.”

아침 안 먹어.”

규칙적인 식사는 중요합니다. 얼른 일어나세요.”

누가 그런 토비오쨩 같은 소리를 하는 거야.”


오이카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눈을 떴다.


토비오쨩이네.”


카게야마의 젖은 머리칼에서 차가운 물방울이 하나, 오이카와의 뺨 위로 똑 떨어졌다.


샤워했어?”

. 로드워크 하는 김에 배구 산책도 시키고 왔거든요.”


날이 더워 씻은 지 얼마 안 됐는데도 벌써부터 땀이 난다며 카게야마는 제 옷자락을 잡고 펄럭였다.


그러고 보니 오이카와상 잠버릇 안 좋던데요.”

내가?”

. 아침에 일어나보니 오이카와상 손은 제 얼굴 위에 올라와 있고 다리도 배 위에 올라와 있더라고요.”

, 세수하고 올게!”


오이카와는 괜히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어제 카게야마의 이마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그대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는 세면대에 찬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고 있다, 숨이 찰 때쯤 고개를 들었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차갑다. 숨이 막힌다. 그는 가끔씩 긍정적이지 않은 감각에서 자신이 살아있다는 걸 느끼곤 했다. 대부분의 화장실이 그렇듯 세면대 위에는 거울이 달려있었지만 오이카와는 일부러 거울 쪽으론 눈길도 주지 않고 수건에 얼굴을 파묻었다. 물에 빠진 생쥐 꼴일 자신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꼴불견일게 뻔했으니까.


 

 

총각 여기 앉아요.”


오이카와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할머니가 그에게 손짓을 했다. 깔끔하게 개켜서 정돈되어 있는 이부자리와 거실 한가운데 놓인 아침상이 보였다. 이미 차려진 상을 거절하기도 뭣해서 오이카와는 어색하게 자리에 앉았다. 마지막으로 아침을 챙겨먹은 게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았다. 언제부터인지 주말이면 늘 오후까지 늘어지게 자다, 사둔 빵으로 점심을 때우는 게 익숙해져버렸다.


밥이 너무 많은 것 같은데.’


그는 제 앞에 놓인 산처럼 수북한 고봉밥을 보고 난처한 듯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어쩌지? 너무 많으니 좀만 덜어도 되냐고 물어볼까? 수저를 만지작거리며 이도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는 그의 얼굴 옆모습을, 카게야마가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눈치 챈 오이카와가 카게야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카게야마는 아직 수저도 들지 않고 있었다.


왜 안 먹어?”

오이카와상이 더 어른이니까요.”

?”


카게야마는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오이카와상이 저보다 더 어른이니까 오이카와상이 먼저 수저를 드시기 전까진 저도 밥 못 먹습니다.”

토비오쨩은 이상한 곳에서 예의가 바르단 말이야.”


오이카와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수저를 들자, 카게야마도 수저를 들고 제 앞의 밥을 푹 퍼서 입에 넣기 시작했다. 아직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게 익숙지 않은 오이카와와 달리 카게야마는 숟가락을 제법 잘 썼다. 그러고 보니 카레를 좋아한다고 했었지? 그래서인가?


, 맞다.”


카게야마는 갑자기 수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키더니, 부엌에서 작은 그릇을 하나 가져와 오이카와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왜?”

김치 매우면 헹궈 드시라고요.”

토비오쨩은?”

전 괜찮아요.”


나도 괜찮다고 말할 타이밍을 놓치고 얼떨결에 카게야마가 내미는 물통을 받아든 오이카와는 그릇에 물을 조금 따랐다. 식탁 위에 매운 반찬이라고 해봤자 김치정도니까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는데. 그리고 이렇게 헹궈 먹는 건 보기 흉하잖아. 오이카와는 괜히 귓불을 만지작거리다 젓가락을 들고 배추김치를 집어 물에 헹궜다. 그리고 밥 위에 양념이 씻겨 나간 배추를 얹어 입에 퍼 넣었다. 매운 걸 억지로 참고 먹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


수저와 그릇이 달그락 거리는 소리뿐인, 대화 하나 없는 아침식사였지만 달그락대는 고요함이 무겁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양념을 씻어 내거나 생선의 살을 발라내거나 하며 오랜만의 아침밥을 마지막까지 꼭꼭 씹어 넘겼다.


 

 

밥을 많이 먹었으니 배가 더부룩할 법도 한데 의외로 든든하기만 할 뿐 속이 더부룩하진 않았다. 설거지라도 돕겠다는 걸 할머니가 만류하는 탓에 오이카와는 거실에 가만히 앉아있어야 했다. 눕고 싶은데 누우면 안 되겠지. 눈치 보이기도 하고 토비오가 합숙 때처럼 밥 먹고 바로 눕는 거 아니라고 잔소리할 게 뻔해.


열어둔 현관문에 길게 드리운 발이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거렸다. 날이 더운 탓인지 백구는 집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오이카와상 수박 드세요.”

고마워.”

선풍기 틀어드릴까요?”

아냐 괜찮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앞에 수박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았다.


어디 가? 토비오쨩은 안 먹어?”

잠깐 배구 밥 좀 주고요.”


오이카와는 수박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내가 줘 봐도 돼?”

개 좋아하십니까?”

? .”


그 거리에서도 용케 밥이라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벌써부터 집 밖으로 나와 꼬리를 흔들고 있는 백구를 보며 오이카와가 말끝을 흐렸다. 백구는 카게야마가 나오자마자 멍! 하고 한번 짖고는 밥그릇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사료 포대에서 사료를 크게 한 컵 퍼서 오이카와에게 건넸다.


이거 밥그릇에 부어주시면 돼요.”

조금 많지 않아?”

많이 먹고 쑥쑥 크면 좋잖아요.”

토비오쨩은 오이카와상보다 많이 먹어도 더 작잖아!”


오이카와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낸 것을 후회했다. 괜한 말을 했나. 이제 나는 선배도 뭣도 아닌데. 그러나 카게야마는 중학교 시절 그랬던 것처럼 입을 쭉 내밀고 투덜거렸다.


더 클 겁니다!”


오이카와는 변해버린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며 개밥그릇을 받아들었다.


, 네 그래봤자 토비오쨩은 꼬맹이겠지만.”


카게야마가 불만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중학교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오이카와는 집 안으로 쏙 들어가서 자신을 경계하고 있는 백구 앞에 밥그릇을 놓아주었다. 그리고 강아지의 까만 눈을 들여다보며 입술을 열었다.


배구야.”


제 이름을 부르는 걸 알아들었는지 강아지는 귀를 쫑긋거렸으나 밖으로 나오진 않았다.


배구야, 나와 봐.”

할머니가 우리 배구는 잘생긴 사람을 좋아한댔어요.”

그럼 내가 부르면 바로 나와야하는 거 아냐?”

제가 부르면 나옵니다!”


카게야마가 배구야하고 부르자마자 냉큼 달려 나와서 꼬리를 흔드는 백구를 본 오이카와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잘생긴 사람 좋아한다는 거 거짓말이지!”

할머니께서 거짓말을 하실 리 없습니다!”

근데 왜 내가 부르면 안 나와?!”

잘생기지 않아서?”

오이카와상이 토비오쨩보다 잘생겼거든요?!”


오이카와는 꼬리를 흔들면서 카게야마의 다리에 달라붙는 백구를 원망스런 얼굴로 내려 보았다. 내가 어디가 어때서. 오이카와상이 토비오쨩보다 더 잘생겼는데!


백구는 오이카와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아지풀 같은 꼬리를 흔들어대며 밥그릇에 고개를 파묻고 사료를 먹기 시작했다.


저게 남의 속도 모르고 아주 잘만 먹네.”

잘 먹으면 좋은 거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어차피 잘 먹을 거면서 나는 왜 경계한 거야?”

잘생기지 않아서?”

그건 아니거든! 절대 아니거든!”


오이카와는 빼액 소리를 지르곤 쭈그리고 앉아서 백구가 밥 먹는 걸 지켜보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도 오이카와와 백구를 번갈아 보더니 오이카와 옆에 앉아서 조잘조잘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배구 원래 처음 여기 왔을 땐 요만했습니다.”


카게야마는 양손을 조금 벌리고 오이카와를 쳐다봤다. 오이카와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보고만 있자 동의를 구하듯 한 번 더 진짜 요만했어요.” 라고 말했다.


그래, 그래. 엄청 작았네.”

근데 벌써 이렇게 자랐습니다!”

. 대단하네.”

앞으로 더 자랄겁니다!”


꼭 제 키가 자라기라도 한 것 마냥 의기양양해하는 카게야마를 보며 오이카와가 피식 웃었다.


그래. 배구 더 자랄 거야.”

무슨 얘기들을 하나?”


머리 위로 드리운 그림자에 놀란 오이카와가 일어나 어색하게 쭈뼛대며 뒤를 돌아봤다. 할머니였다.


그냥 별 거 아니었어요. 강아지 얘기를 좀.”

토비오도 우리 백구를 엄청 예뻐하는데 총각도 그런가보네. 선배라 그런가?”


오이카와는 그답지 않게 어색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녀는 그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깃털처럼 금세 훅 날아갈 것 같은 무게감이었다.


다음에도 또 놀러 와요.”

 

* * *

 

차창에 머리를 대고 있으니 덜컹대는 버스의 진동이 느껴졌다.

버스는 역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휴대폰 화면을 켜 시간을 보며 역에 도착하기까지 몇 분이나 남았는지를 가늠해보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 사람을 태우는 걸 보고 화면을 껐다. 가는 중 몇 번이나 정류장에 설지, 몇 분이나 서 있을지를 모르는 이상 역에 도착하는 정확한 시간은 알 수 없을 터였다.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버스는 덜컹거리면서도 달리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의 카게야마가 떠올랐다가 덜컹거리며 지워졌다. 어깨에 닿는 온기가 없었기에 그는 몸을 더 기울였다. 속에서 마른기침이 날 것만 같았다.


버스가 또 정류장에 멈춰 섰다.

 

* * *

 

좁은 원룸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일본에 있는 엄마에게서 온 전화였다.


응 엄마. ?”

얘는 전화 받자마자 그게 무슨 말이니? 엄마가 일 있어야만 너한테 전화해?

아니 그건 아닌데 국제전화 요금 비싸잖아.”

알면 너도 가끔 집에 전화 주고 그래라.

나한테도 비싸서.”


오이카와는 일부러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단어를 고르며 뒷통수를 긁적였다.


점심시간인데 밥은 먹었어? 막 끼니 거르거나 또 빵으로 때우는 건 아니지?

엄만 전화만 하면 맨날 그 소리야.”

이렇게 잔소리라도 안하면 네가 밥 잘 안 챙겨먹으니까 그렇지.

배고프면 알아서 먹는다니까 그러네.”

배 안 고파도 제 때 제 때 챙겨먹어야 하는 거야.

알았어. 챙겨 먹을게.”

어디 아픈 곳은 없지?

. 괜찮아.”

요즘 더우니까 더 몸 챙겨야 해. 컨디션 안 좋으면 바로바로 병원에 가보고. 맞다, 보내준 영양제는? 잘 먹고 있니?


그는 휴대폰 너머 들리는 재촉에 등이 떠밀리는 기분으로 냉장고 문을 열었다. 물과 콜라, 유통기한이 지나버린 우유, 마른 반찬이 담긴 통들 몇 개와 반쯤 먹은 식빵, 잎 끝부분이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진 양배추가 전부였다. 그는 귓가에 들리는 질문들에 건성으로 응, 응 하고 대답하며 양배추를 냉장고 안에서 꺼냈다. 언제 산건지도 기억나지 않는 양배추에선 축축한 물기가 묻어났다. 아무래도 썩어버린 모양이었다.


이제 끊어야겠다. 어휴 요금만 아니었어도.


휴대폰으로 엄마의 투덜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오이카와는 그 목소리를 들으며 양배추를 음식물 쓰레기봉투에 버리고 다시 냉장고를 열어 식빵을 꺼냈다.


이제 진짜 끊는다? 아들, 잘 지내는 거 맞지? 힘든 일 있으면 엄마한테 꼭 전화해.

힘들 일이 뭐가 있다고.”

얘는! 아들이 멀리 가 있으면 당연히 걱정 되지.

별로 먼 거리도 아니잖아. 바로 옆 나라고.”

그래도 여기랑은 다른 게 많으니까.

걱정 마. 난 괜찮으니까.”

더우니까 정말로 몸 잘 챙겨야 해. 알았지?

알았다니까. 그 소리만 지금 열 번 넘게 들었어.”


오이카와는 뜨거워진 휴대폰을 반대쪽 귀로 옮기곤 아주 잠깐 동안 입술을 깨물었다.


엄마, 진짜 걱정할 거 없어. 괜찮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으니까


괜찮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는 긴 손톱으로 식탁을 톡톡 두드렸다.


괜찮아. 진짜 다 괜찮아.”


괜히 목이 메었다.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고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봤다. 손 안이 뜨끈뜨끈했다. 통화시간 2041. 요금 많이 나오겠네. 근데 국제전화 요금이 얼마쯤 되더라?


그는 잠시 고민했으나 곧 자신이 먼저 일본에 전화를 건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기 때문에 국제전화 요금이 얼마나 나오는지 잘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리곤 식빵 봉지를 열었다. 사온지 벌써 일주일이 넘어가는 식빵은 딱딱해져 있었다. 그는 냉기가 감도는 식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퍼석퍼석하고 맛이 없었다. 집에 있었을 땐 빵을 사오면 바로 냉장고에 넣어두려는 엄마에게 오이카와는 항상 투덜거렸다. 엄마 빵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맛없어진단 말야! 그럼 어떡해 상하면 어쩌려고. 그렇게 빨리 안 상하거든? 그리고 상하기 전에 내가 다 먹을 거거든! 너 또 밥 안 먹고 빵만 먹으려고 그러지!


그는 또 한 입 빵을 베어 물었다. 차가운 빵이 입 안에서 파스스 부서졌다. 엄마에게 그렇게 투덜댔던 게 굉장히 오래 전 일처럼 느껴졌다. 입 안이 텁텁해진 오이카와는 우유를 꺼내왔으나 유통기한이 이미 한참 전에 지나버렸다는 걸 깨닫고 반 좀 못 되게 남은 우유를 싱크대에 쏟아버렸다. 그는 우유 버리고 대신 물을 꺼내와 식빵 한 쪽을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겼다. 그리곤 더는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아 식빵 봉지 입구부분을 매듭지어 단단히 묶어두고 냉장고에 넣었다.


TV나 볼까.”


식탁을 치운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리모컨 버튼을 눌렀다. 까맣기만 했던 작은 TV의 화면이 켜졌다. 주말 오후건만 딱히 볼만한 게 없었다. 시큰둥한 표정으로 채널을 휙휙 돌려대던 오이카와의 손이 멈췄다. 그가 유일하게 유료결제까지 해가며 신청한 일본 스포츠 채널이었다.


이번 감독은 젊은 선수들을 상당히 많이 기용했네요.

그렇죠. 이번 대회에선 별 성적을 못 거두는 한이 있더라도 새로운 기둥들을 키우는 게 목적이라고 합니다.

제일 어린 선수가 누구죠?

세터인 카게야마 토비오 선수예요. 96년생이고 특이하게 한국에서 용병으로 뛰고 있는 프로 선수인데요, 뭐든 잘하지만 특히 토스가…」


TV 화면에 카게야마의 경기 장면이 나왔다. 카게야마 선수의 서비스 에이스네요.화면 속 카게야마가 높이 뛰어올라 상대편 코트로 점프 서브를 넣고 있었다. 익숙한 폼이었다.


서브가 굉장하네요. 엄청 공격적인데요?


오이카와상 서브 가르쳐주세요.


화면 속의 카게야마는 중학교 시절 자신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카게야마와는 달랐다. 코트 안으로 들어간 카게야마가 불안정한 공을 정확하게 토스하는 장면이 나오자 참고 영상의 해설자들도, TV프로의 진행자들도 호들갑을 떨며 감탄했다.


정말 대단하네요! 그렇죠?


동의를 구하는 것 같은 진행자의 말에 오이카와는 입 꼬리를 올린 것도 아니고, 내린 것도 아닌,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 대단하네.”


오이카와상 서브 가르쳐주세요.


귓가에서 환청이 들리는 것 같았기에, 오이카와는 끄덕이던 고개를 이번엔 휘휘 저으며 소파에 털썩 누웠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된다고 잔소리할 사람도 없었다. TV는 이제 국가대표로 뽑힌 다른 선수들의 경기 영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번 선수 역시 젊은 선수네요, 이 선수는 스파이크가 특히 강한데요관동 출신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에 바로 실업에서…」 오이카와는 눈을 느릿하게 깜빡였다. 진행자의 말은 점점 아득해지고 공이 부딪히는 소리, 코트 위에 운동화 바닥이 마찰하며 나는 소리만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눈을 감으니 코트가 보였다.

 

* * *

 

우우웅- -

 

미야기 현 베스트 세터는 오이카와 토오루 선수

 

요 몇 년 간 점프하고 착지할 때 심한 통증이 있지 않았나요?

 

넌 무슨 팀 가고 싶어?

 

인대가 완전히 나갔네. 혹시 전에도 다리를 다친 적이 있나요? ? 가벼운 염좌요?

그게 오진이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게 하루 이틀로는 이렇게 까진.

 

유럽으로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야 꿈 깨라. 유럽은 아무나 가는 줄 아냐?

 

재활치료만 잘 하면 일상생활에는 별 지장 없을 겁니다. 가벼운 운동도 할 수 있고,

환자분이 좋아하는 배구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선수로 뛰는 건 무립니다.

 

카게야마 말이야, 이번에 미야기현 베스트 세터로

 

우우웅- -

 

 

누구야.”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울리고 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눈을 뜬 오이카와는 인상을 찌푸리며 화면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이카와상?

토비오쨩?”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전화를 건거지? 내가 토비오한테 번호를 알려준 적이 있었던가?


할머니가 다음 주에 또 올 수 있냐고 물어보래요.

.”


카게야마의 말에 오이카와는 바보 같은 소리를 내며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맞다. 토비오가 기어이 정류장까진 같이 가주겠다고 해서 가는 길에 번호 교환했었지.


다음 주에는 뭣 때문에?”

글쎄요? 그냥 놀러 오라는 것 같은데.

그냥?”

바쁘시면 어쩔 수 없고.

토비오쨩이야말로 바쁘지 않아?”

다음 주 주말은 괜찮아요. 연습 시합도 없고.


오이카와가 잠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있자 카게야마가 다시 물었다.


바쁘신가요?

내가 뭐 바쁠 일이 있나. 퇴근하고 나면 딱히 할 일도 없는데.”


오이카와는 아직도 켜져 있는 TV화면으로 눈길을 돌렸다. 배구 관련 프로그램은 이미 끝난 지 오래인지 농구 시합이 나오고 있었다. 그는 리모컨을 들어 채널을 돌렸다. 영화 채널, 여행전문 채널, 요리 채널채널은 많았지만 흥미가 가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럼 오실 수 있으세요? 할머니가 보고 싶다고 하시는데.

채널을 이리 저리 돌리다 결국 다시 스포츠 채널로 돌아온 그는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갈게.”

토요일 괜찮으세요?

.”

저번에 그 정류장에서 기다릴게요. 시간은12시쯤?

. 그때 보자.”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손에 휴대폰을 꼭 쥐고 있었다. TV에선 농구 선수들의 계약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번 계약이 만료되면 유럽 리그로 옮기는 선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 * *

 

주말엔 정말 미안했어요. 집에는 잘 들어갔어요?”

. 잘 들어갔어요.”

미안하니 오늘 점심은 제가 살게요.”


미안했다면서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동료 직원의 등 뒤로 오이카와가 애매한 웃음을 흘렸다.


회사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친절했다. 외국인이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모두가 도움을 줘야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지부로 왔을 때부터 지금까지 오이카와는 줄곧 겉도는 느낌을 받았다. 오이카와는 아직 여기에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그런 거라고 생각하며 이질감을 무시하려 애썼다. 그는 성격도 싹싹한 편이었고 신입답지 않게 실수도 거의 없었다. 이제는 제법 친한 동료들도 생겼다. 나쁠 건 하나 없는 환경이었다. 그럼에도 오이카와는 가끔씩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내가 여기 있는 게 맞는 건가하는 생각을 했다. 나쁠 건 없는데, 정말 다 괜찮은데도 가끔씩은 기분이 이상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이런 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닐 거다. 해봤자 득 되는 게 하나 없는 그런 생각. 그런 것보다는 좀 더 득이 되는 고민을 하는 게 나았다.


그는 컴퓨터 본체의 전원 버튼을 누르고 모니터를 켜며 오늘 할 일의 순서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일단 제일 먼저 물품들 수량을 체크하고 다음엔 거래처에 메일을아니 전화를 거는 게 나으려나? 오이카와는 엑셀 파일을 열면서 책상 위의 초보자도 쉽게 알 수 있는 엑셀 업무 핵심이란 제목의 책을 뒤적였다. 책장마다 붙여둔 포스트잇에 메모가 빼곡했다. 엑셀을 다루는 게 아직 능숙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책을 찾아가며 새 시트를 작성하고 거래처에 연락을 하고 나니 점심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붙들고 씨름하느라 눈이 뻑뻑했다.


밥 먹으러 갈까요?”

, .”


잠시 눈을 감고 눈가에 손을 대고 있던 그는 동료가 부르는 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일식?”

아무거나 상관없어요.”

그 대답이 제일 어려운 거 알죠?”

하하 죄송합니다.”


오이카와가 멋쩍게 웃자 동료는 창문 너머 보이는 국밥집을 가리켰다.


날도 덥겠다 이럴 때일수록 든든한 거 먹어야죠. 설렁탕 괜찮아요?”


설렁탕이면 맵지도 않고 그의 입맛에도 맞았기에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회사 근처 식당들이 점심시간에 그렇듯 설렁탕집에도 손님이 제법 많았다. 운 좋게 마침 다 먹고 나가는 손님이 있지 않았더라면 식당가를 한참을 배회해야 했을 거라면서 동료 직원이 휴지로 땀을 닦았다.


요새 진짜 덥지 않아요? 잠깐 걸었는데도 땀이 나네. 이모! 여기 설렁탕 둘이요!”


직원이 가져다 준 냉수를 따라주자 바로 한 컵을 다 비우는 동료를 보며 오이카와도 찬 물을 한 모금 넘겼다. 동료는 휴대폰을 잠시 만지작거리다 내려놓고는 그에게 말을 걸었다.


애인이 말이죠, 요즘 운동 좀 하라고 난리예요. 왜 요즘 아이돌들 보면 막 복근도 있고 허벅지도 탄탄한데 저는 말랐잖아요. 근데 운동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일도 힘든데.”

그렇죠.”


오이카와가 맞장구를 쳐주자 신이 난 그가 본격적으로 조잘대기 시작했다.


다들 헬스 다닌다고 저보고도 주말에 헬스라도 좀 다니라는데 주말이면 자야죠. 주말 아님 잘 때도 없어. 근데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오이카와씨는 키도 크고 몸도 좋네요? 오이카와씨도 주말에 헬스 다녀요? 아님 뭐 운동하나?”

운동 했었어요.”

진짜요? 와 어쩐지. 무슨 운동 했었어요? 농구? 축구? 수영?”


오이카와는 물을 한 모금 더 삼켰다.


배구요.”

배구요? 배구는 동호회도 잘 없을 텐데. , 일본은 많나요?”

동호회는 아니고부 활동으로 쭉 했었어요.”


오이카와는 대학도 스포츠 추천으로 갔다는 말은 일부러 빼놓았다. 대학을 배구로 갔다는 얘기를 하면 다들 근데 왜 지금은 배구 안 해요?’라고 물었으니까.


, 그렇구나. 우리나라엔 배구부 잘 없어서 부 활동으로 배구를 했다니 좀 신기하네요. 전 체육 진짜 못해요. 체육시간에 뭐냐 배구 그 리시브? 해봤었는데 어렵고 폼도 안 나고그래도 점심시간에 가끔 애들이랑 축구나 농구는 했었는데.”


에어컨을 틀어뒀건만 그래도 아직 더운지 또 물 한 컵을 들이키는 그를 보며 오이카와는 향수 비슷한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일본에 있을 땐 자신이 항상 저렇게 쉴 새 없이 떠들고 주변 사람들이 들어주는 편이었다


말 수가 줄었을 때쯤엔 일본을 떠났다.


맞다. 배구하니까 말인데 우리나라 프로리그에도 일본인 선수 하나 있지 않아요? 그 까만 머리에 눈매 날카롭고 그뭐였더라 이름이

카게야마 토비오.”

맞아 그런 이름이었어요. 제 여동생이 연예인들 사진 모아두는 폴더에 그 선수도 있어서 기억하고 있는데 엄청 잘한다면서요? 유럽 같은 데에서도 불렀을 것 같은데 왜 여기로 왔지? 우리나라에서 연봉을 더 높게 불렀나? 근데 그래도 유럽에 가는 게 낫지 않나?”


직원이 식사를 가져왔기에 대화는 잠시 끊겼다. 뽀얀 국물에서 김이 올라오는 걸 보고 있으니 하얗던 할머니의 머리카락이 떠올랐다. 할머니는 그가 잠들 때까지 마른기침을 멈추지 않았다. 식사가 끝난 후 약을 부엌에서 약을 한 웅큼 집어 털어 넣던 할머니를 떠올리던 오이카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러게요. 유럽에 갈 수 있으면 거기 가는 편이 더 나을 텐데.”

, 안 불렀을 수도 있고. 그리고 우리가 여기서 그 선수 걱정하는 거 진짜 쓸 데 없는 거긴 하죠. 프로 중에서도 엄청 잘한다는 소리 나올 정도면 아마 천재일 텐데.”

아마 천재인 게 아니라 진짜 천재예요.”


동료 직원은 깍두기 국물을 설렁탕 안에 넣으며 그에게 물었다.


진짜요? 경기 본 적 있어요?”

있어요.”

어때요?”

그냥 뭐잘하고부럽죠 뭐.”


그는 깍두기를 하나 입에 넣고 씹었다. 매웠다.


오이카와씨는 매운 거 잘 못 먹죠? 접시 가져다 달라고 할까요? 깍두기 헹궈 드실래요?”

아뇨 괜찮아요.”

왜요? 매워하는 것 같은데.”

그렇게 먹으면 보기 흉하잖아요.”

 

* * *

 

내가 그때 왜 간다고 했지피 같은 주말인데.”


키보드를 두드리고 적당히 식사를 하고, TV를 보고, 눕고, 그리고 다시 출근 하는 걸 반복하다보니 벌써 금요일 저녁이었다. 가겠다고 대답한 건 자신이건만 막상 약속일이 다가오니 마음이 복잡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빈손으로 가긴 뭣해서 선물을 사러 백화점으로 가면서도 오이카와는 몇 번이고 문자를 썼다 지웠다하는 걸 반복했다

그는 지하 식품관에 도착하고 나서야 문자 보내는 걸 포기하고 매장들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역시 간식거리가 좋겠지.’


오이카와는 진열되어 있는 빵이나 케이크 쪽으로 눈길을 주며 걸었다. 살고 있는 원룸 근처엔 괜찮은 빵집이 없었고, 그렇다고 빵 하나 사자고 멀리 나가기도 귀찮았기에 이런 구경은 오랜만이었다. 그는 시식용으로 작게 잘라진 크림빵 한 조각을 입에 넣었다. 집 근처 마트에서 세일하고 있는 지나치게 달고 푸석한 크림빵보다 훨씬 맛있었다. 혀 위에서 부드럽게 녹아내리는 크림에 기분이 좋아진 오이카와는 크림빵을 한 봉지 사들고 조금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별별 가게가 다 있었다. 감자튀김 전문점이나 샐러드 테이크아웃 전문점, 아예 다양한 차만을 파는 곳도 있었다. 그래도 그 중에 가장 많은 건, 그가 좋아하는 빵이나 케이크류를 파는 가게였다. 새하얀 생크림을 듬뿍 올린 케이크들을 보고 있으니 백화점에 오려면 중간에 내렸다가 길을 좀 돌아가는 버스를 타야한다는 이유로 여태까지 오지 않았던 게 후회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자주 오는 건데. 까짓 거 시간 좀 들면 어떻다고.


부드러워서 노인 분들도 먹기 좋다는 푸딩 세트를 사서 백화점을 나온 오이카와는 정류장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크림빵을 하나 꺼내 입에 물었다. 달달하고 촉촉한 크림빵을 먹으며 그는 아주 오랜만에 베니랜드의 테마송을 흥얼거렸다.

 

* * *

 

미안. 아무래도 20분정도 늦을 것 같아.”

괜찮습니다. 기다릴게요.

정말 미안해. 내가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고도 인상을 찌푸린 채로 의자에 몸을 구겼다. 번호만 보고 옆에 작게 -1이라고 써져있는 건 미처 보질 못하는 바람에 늦어버렸다.


아예 처음부터 번호를 다르게 하면 되는 걸 가지고 왜 -1을 붙이냔 말이야.”


그는 혼잣말로 불평을 늘어놓으며 차창 너머 풍경을 바라봤다. 버스는 중간에 다른 길로 빠져 마을 하나를 빙 돌아가고 있었다. 20분 정도 더 걸리긴 하지만 할머니 댁 근처 정류장에 가긴 간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뭔지는 몰라도 셔츠 앞주머니에 들어있던 빳빳한 종잇조각이 몸을 숙일 때마다 자꾸만 빠지려 드는 게 거슬렸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 설 때마다 더 늦을까 초조해진 오이카와는 자꾸만 휴대폰 화면을 켜 시간을 확인했다.


 

 

카게야마에게 말했던 시간에서 5분이나 더 지나 1225분이 되어서야 약속장소에 도착한 오이카와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계속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카게야마에게 사과했다.


늦어서 미안해. 번호를 잘 봤어야 했는데.”

괜찮다니까요. 겨우 20분쯤 늦은 건데요 뭘.”


카게야마는 파란 눈을 깜빡였다.


이렇게 오셨으면 된 거죠.”


 

 

전에는 우산을 삐딱하게 쓰고 나란히 걸었던 길을 카게야마가 조금 앞장 서 걷고 있었다. 뙤약볕이 사정없이 내리쬐는 길을 걸으며 오이카와는 문득 더워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말없이 걷고 있던 카게야마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이걸로 땀 닦으세요.”


흰색 바탕에 가장자리가 민트색으로 수놓아진 손수건이었다. 그걸 보고 잠시 주춤한 오이카와는 나이를 먹으면 사람이 쓸 데 없이 감상적이게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손수건을 받아 땀을 닦고 다시 걸었다. 곧 파란 대문이 보이고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은 목줄을 하지 않았는지 카게야마가 대문을 열자마자 백구가 꼬리를 흔들며 달려왔다. 백구는 앞발을 들고 카게야마의 다리에 달라붙어서는 반갑다고 통통 뛰어다니다 뒤로 넘어졌다. 오이카와는 어어-하며 일으켜 세워주려 손을 뻗었으나 백구는 넘어지자마자 벌떡 일어나서 다시 카게야마에게 달려갔다.


배구 너는 들어오면 안 돼.”


카게야마가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자신도 앞발을 슬쩍 내밀었던 백구는 그 말에 신발장 밑으로 내려가 끼잉댔다.


백구가 토비오랑 놀고 싶은 모양이네.”


할머니가 방 안쪽에서 기침을 하며 나오는 걸 본 오이카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녕하세요.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건 선물이에요.”

선물씩이나 사올 필요 없는데. 그냥 편하게 놀다 가면 되는 걸.”


선물을 사올 줄은 정말로 몰랐는지 할머니는 푸딩 세트를 받아 들면서 허허 웃다가 다시 잔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몰라 하는 오이카와와는 달리 카게야마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지 컵에 미지근한 물을 따라와 할머니에게 건넸다. 물 한 컵을 다 비운 할머니는 아직도 현관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오이카와를 보고 걱정하지 말라는 듯 태평한 어조로 말했다.


이 나이가 되면 원래 다 이래.”


할머니는 식탁 위에 컵을 두고 푸딩세트를 냉장고에 넣으며 냉장고 안을 살피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떠오른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강에 다슬기가 있으려나?”

다슬기요?”

나 어릴 땐 이 근처 강가에서 다슬기 잡아다 된장 풀어서 국 끓여먹고 그랬거든. 오랜만에 그게 먹고 싶네. 아직도 강에 다슬기가 살려나?”


거실에 앉아있던 오이카와는, 버스에 탈 때부터 계속 빠질 듯 말 듯 거슬렸던 빳빳한 종잇조각을 꺼내 바닥에 두었다. 거래처에서 받은 명함이었다. 사무실에도 똑같은 게 있으니 이건 그냥 버려도 되겠지-하는 생각에 쓰레기통을 찾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할머니가 손으로 뭔가를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는 게 보였다.


이렇게 강가에 있는 큰 돌들을 들어 올리면 밑에 다슬기가 있었어. 맞아. 이렇게 말로만 할 게 아니라 둘이 강가에서 다슬기라도 잡아오면? 안에만 있어봤자 할 일도 없을 텐데 백구 산책도 시킬 겸해서.”

그냥 돌만 들어 올리면 있는 거예요?”

돌 밑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한 번 다녀와 볼게요. 오이카와상은 괜찮아요?”

괜찮아.”


제 얘기를 하는 걸 들었는지 백구는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집 안에 발을 들이자마자 밖으로 나가게 된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백구의 주둥이를 치우며 운동화 끈을 묶는 걸 보다 집 안쪽으로 눈길을 슬쩍 돌렸다. 할머니가 약병에서 약을 꺼내는 게 보였다.


오이카와상, 가요.”

? , 그래.”


신발 끈을 다 묶은 카게야마가 저를 부르는 소리에 오이카와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편찮아 보이는 할머니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려니 귓가에서 회사 동료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유럽에 가는 게 낫지 않나?

 


 

말없이 십 분쯤 걸었을까, 자동차들이 지나다니는 다리 밑으로 흐르는 조그만 하천이 보였다. 관리가 되지 않은 하천변엔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강가? 여기가? 제대로 온 거 맞아?”

여기 말곤 없습니다.”

엄청 작네. 날씨 더워서 물도 다 말랐겠다.”

다슬기가 있을까요?”

글쎄다.”


도로 옆으로 작게 난 길을 조심조심 내려가자 곧바로 하천변이었다.


물이 흐르긴 흐르네요.”

진짜 조금밖에 안 흐르는데.”


오이카와는 작은 물줄기를 보며 혀를 찼지만, 백구는 그것도 강이라고 신이 난 듯 짖어대더니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배구야 너무 멀리까지 가면 안 돼.”

!”

부르면 오고.”

!”


오늘은 목줄도 없겠다 신난 백구가 나비를 쫒아가는 걸 보고 카게야마가 피식 웃었다.


부르면 와?”

. 금방 옵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물음에 확신에 찬 대답을 내놓고는 몸을 숙여 돌을 하나 뒤집었다. 돌바닥엔 아무 것도 없었다. 카게야마가 다른 돌을 뒤집는 걸 본 오이카와도 허리를 숙여 강 안의 돌을 뒤집었다.


근데 토비오쨩은 다슬기 본 적 있어?”

책에서요.”

토비오쨩이 책도 보무슨 책이었는데?”

만화책이요. 공포만화라고 했나? 카라스노에서 합숙 갔을 때 후배가 들고 왔었어요.”

공포만화에 왜 다슬기가 나와?”

다슬기가 주인공은 아니고주인공이 반딧불 괴물이었던 것 같은데 반딧불 유충들이 다슬기를 먹어서 나오는 거였습니다.”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네?”

그 만화를 보고 나서 히나타 녀석이 밤중에 화장실 갔다가 복도에서 츠키시마가 휴대폰 화면 밝게 해놓고 게임하는 걸 보고 놀라서 반딧불 괴물이라고 소리를 질러댔거든요.”

푸하하!”


주홍색 머리카락의 쬐끄만 꼬마가 왁왁댔을 걸 그려보며 웃음을 터트리다 발 위에 돌을 떨어뜨릴 뻔한 오이카와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휘청거렸다.


괜찮으세요?”


아까까지만 해도 좀 거리가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카게야마가 그가 넘어지지 않도록 팔을 붙들어주고 있었다. 다시 균형을 잡은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기 위해 얼굴을 돌렸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랬듯 토비오의 눈높이는 아직도 자신보다 조금 아래에 있었다.


고마워.”


카게야마가 팔을 놓고 다시 돌을 뒤집는 걸 보며 오이카와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TV에선 토비오의 키가 186cm라고 했다. 대학에서 마지막으로 봤을 때 183cm쯤 됐던 것 같은데 그 이후로도 계속 자란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돌을 하나 뒤집었다. 이번에도 다슬기는 없었다. 근데 그러면 나는 몇 cm쯤 되려나? 지금 한 190cm쯤 되는 건가? 마지막으로 쟀을 때 186.4cm였는데.


그는 배구를 그만두게 된 이후론 키를 재본 적이 없었다. 배구에선 그렇게 중요했던 키가 평범한 회사원에겐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내 키는 왜 계속 자라는 거지.”

뭐라고 하셨어요?”

아냐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닐 생각을 떨쳐내고 오이카와는 다시 허리를 숙였다.


근데 오이카와상, 저 지금 떠올랐는데요.”

?”

그 만화에서 다슬기는 깨끗한 물에서만 산다고 했습니다.”

그걸 지금에서야 떠올리면 어떡해! 토비오쨩 바보!”

그리고 생각해보니 여기서 다슬기를 잡아간다고 해도 그걸 먹을 수 있을지가.”

그건 그렇지.”


위로 차도가 지나가는 하천이니 다슬기가 있다고 해도 먹어도 안전할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렇게 당연한 사실을 카게야마가 말해줄 때까지 깨닫지 못한 것에 왠지 자존심이 상해, 오이카와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토비오쨩 같은 바보랑 같이 있다 보니 오이카와상까지 바보가 되어버리잖아!”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의 발언이 맘에 들지 않는지 똑같이 입술을 삐죽였지만 선배에겐 깍듯한지라 차마 대들지는 못하고 말을 돌렸다.


다슬기 어쩌죠?”

그냥 돌아가야지 별 수 있나.”

슈퍼에서 팔지 않을까요?”

다슬기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그럼 슈퍼에 한 번 가봐요.”


카게야마가 배구야 하고 부르자 백구가 저 멀리에서 쪼르르 달려왔다.


 

 

카게야마는 백구와 오이카와를 데리고 근처에 있는 슈퍼란 슈퍼는 다 뒤졌으나 다슬기 같은 걸 슈퍼에서 팔 리가 없었다. 30분이나 떨어져있는 슈퍼에서도 다슬기를 팔지 않자 기가 팍 죽었는지 시무룩해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슈퍼 주인이 말했다.


이런 데에선 다슬기 안 팔지. 저기 버스타고 전통 시장에라도 가면 모를까.”

전통 시장? 거기 가면 팔아요? 몇 번 버스 타고 가면 됩니까?”


카게야마는 슈퍼 주인에게 시장까지 가는 법을 물어, 버스를 타고 가 기어이 다슬기를 한 봉지 샀다. 오이카와는 피곤했는지 옆자리에 앉아 졸고 있는 카게야마를 한 번 보고 창문 너머 하늘을 올려다봤다여름이라 그런지 한참을 뛰어다녔는데도 해는 아직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내려야 할 곳이 가까워지자 카게야마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비닐봉지를 들고 백구와 함께 내리는 걸 보고 뒤 따라 내렸다.


근데 이렇게까지 하면서 꼭 다슬기를 가져가야 해? 그냥 없었다고 하면 되는 걸.”

할머니가 드시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까요.”

다음에 사가면 되잖아.”

다음은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할머니 어디 아프신 거야?”


카게야마의 발걸음이 조금 느려졌다.


병명은 길어서 까먹었는데 말기라고 그랬습니다. 나이가 있어서 수술도 힘들고, 해도 오래는 못 사실 거랬어요. 길어봐야 1년쯤? 그래서 수술 받는 대신 여기 와서 사시는 거고.”

근데 왜 한국까지 오신 거야?”

여기가 고향이래요.”

그래서 자식들이랑 사는 대신 여기까지 와서 사시는 거야?”

자식 없으신데요?”

? 너희 할머니 아니야?”

. 이웃집 할머니예요.”

이웃집 할머니를 네가 왜 돌봐? 그것도 한국까지 와서.”


카게야마는 이번엔 잠시 멈춰 섰다.


저희 집은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집에 잘 안 계셨거든요. 그래서 어렸을 땐 항상 혼자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은뭐 때문에 다쳤는지는 까먹었는데 무릎이 다 까져서 울면서 돌아가고 있었거든요? 그걸 할머니가 보고 데려가서 약도 발라주고 병원에도 데려다 주시고그리고 다음날부터 계속 돌봐주셨어요.”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 카게야마가 덧붙였다.


배구 교실에 처음 데려가주신 것도 할머니예요.”


오이카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카게야마를 따라 걸었다. 그러나 머릿속은 복잡했다. 아무리 그래도 잘 찾아보면 친척정도는 있을 텐데 굳이 직접 할머니를 돌볼 필요가 있나? 아니 그렇게 돌봐주셨던 분이라면 뭐.


그래도 유럽리그가


오이카와상

?”


오이카와는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카게야마는 다슬기를 여전히 꼭 안은 채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린 반딧불들은 다슬기를 먹고 자라잖아요.”

어린 반딧불이 아니라 반딧불 유충.”

네 그거요.”

반딧불 유충 얘기는 왜?”

반딧불은 다슬기를 먹고 자라니까 저희도 다슬기를 먹으면 반딧불처럼 빛이 날까요?”


이번엔 오이카와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곤 어이없다는 기색을 숨기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그럴 리가 있냐! 토비오쨩 바-!”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죠! 반딧불도 다슬기를 먹고 자라니까먹으면 빛이 날 수도

없거든!”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고함을 쳐버린 오이카와는 제 목소리에 제가 놀라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다슬기를 먹어도 반딧불처럼 빛날 수는 없어.”

왜요?”


카게야마는 정말로 궁금한 모양이었다. 오이카와는 헛웃음이 났다.


그거야 당연한 거잖아.”


그는 한걸음 더 물러났다. 카게야마가 조금 더 멀어졌다.


빛나고 안 빛나고 그런 건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는 거야. 그냥 처음부터 빛나게 태어나는 사람이 있고 아닌 사람이 있는 거라고.”


오이카와는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바닥이 보였다.


그도 스스로 빛나보려 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빛날 수는 없었다


스포츠는 이분법을 좋아했다. 천재니 수재니 하며 그를 괴롭히는 걸로도 모자라, 운을 가지고도 사람을 두 무리로 나눴다. 아무리 천재여도 순간의 실수나 사고로 부상을 당해 다시는 선수로 뛸 수 없는 경우가 생기곤 했다. 전도유망했던 선수가 안타깝게 부상으로 은퇴한다는 기사정도는 스포츠 신문을 조금만 뒤져보면 찾을 수 있었다. 아니, 굳이 신문까지 들춰볼 필요도 없었다. 중학교 때도,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부상으로 어쩔 수 없이 은퇴해야만 하는 선수들이 어느 팀에나 한명씩은 꼭 있었다. 오이카와는 운이 없는 축이었다. 심지어 그건 노력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이었다.

한 때는 잡지에 짧은 인터뷰도 실린 적이 있었지만, 결국 천재는 아니었기에 그의 부상 소식은 스포츠 신문 귀퉁이에 작게나마 실리는 일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결론 내렸다. 결국 자신은 빛나지 못할 운명이었던 거라고.


바닥을 보고 있던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토비오쨩.”

?”

졸업하고 여기저기서 스카웃 제의 많이 왔었지?”

.”

혹시 유럽 팀도 있었어?”

몇 팀쯤 있었죠.”


가슴께에서 뭔가 울컥하고 올라와서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근데 왜 유럽에 안 갔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할머니 때문에 그랬다는 대답은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아는 카게야마 토비오는 배구가 제 1순위인 선수였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그가 가장 바라지 않던 대답을 내놓았다.


그야 할머니를

할머니는 다른 사람이 돌봐도 되지만 유럽에 갈 기회는 또 올지 안 올지 모르잖아!”


치미는 덩어리를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 목구멍이 타들어 갈 듯이 쓰라렸다.


왜 화를 내십니까?”


카게야마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척이나 거슬렸다.


네가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렇잖아!”


오이카와는 또 버럭 소리쳤다. 카게야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슬기를 먹어봤자 반딧불처럼 빛날 수 없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도 모른다. 바보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만 빛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일 거다. 카게야마는 태어날 때부터 빛나도록 정해진 자였다. 천재인데다 운까지 좋았다. 그러니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고민 따위 하지 않아도 빛나고 있으니까. 다 가지고 있으니까.


오이카와는 입술을 깨물었다. 자신은 계속 흔들리고 있는데 카게야마의 눈동자에는 일말의 떨림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가능한 일일 거다. 망설임도, 그리고 열등감도. 카게야마는 자신이 원하는 건 다 가지고 있는데, 자신이 버리고 싶어 하는 건 하나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건 불공평했다.


오이카와상? 오이카와상, 어디 가십니까?”


오이카와는 이를 악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카게야마는 쫓아오지 않았다. 잘 된 일이었다. 카게야마라면 꼴도 보기 싫었다. 모든 걸 다 가진 듯한 것도 싫었고, 배구가 아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한 것도, 그 결정에 후회조차 없는 것도 싫었다.


오이카와는 마침 정류장에 들어오는 버스를 번호판도 보지 않은 채 무턱대고 타버렸다. 그리고 일부러 창문 쪽으론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창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면 자신이 얼마나 유약하고 한심한, 열등감에 찌든 인간인지를 봐버릴 것 같아서였다.

다 꼴도 보기 싫었다. 그 중에서도 자신을 가장 보고 싶지 않았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자물쇠로 잠겨있는 맨 위 서랍장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랍장 깊숙이 넣어둔 덕에 먼지 하나 쌓이지 않은 액자를 꺼냈다.

금색 테두리의 액자 안에는 상패가 들어있었다. ‘미야기현 베스트 세터 오이카와 토오루’.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라고!”


이제 이딴 건 다 필요 없어. 오이카와는 상패를 든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이딴 건 깨뜨려버리는 게 맞았다.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베스트 세터가 될 수 없었다. 이런 걸 계속 서랍 속에 넣어둬 봤자 쓸데없는 미련만 남을 뿐이다.


이딴 거.”


손이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상패를 내팽개치지 못하고 힘없이 팔을 내렸다.


길고도 길었던 낮도 이제 끝나려는지 커튼 틈새로 미약한 햇빛만이 한줄기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상패를 든 채로 햇빛 속을 유영하는 작은 먼지들을 보았다. 배구를 그만두게 된 후로 학창시절 자신의 인터뷰가 실린 잡지는 바로 버려버렸다


먼지가 되려고 했다

바닥에 착 달라붙어서 흔들릴 일이 없는 먼지가


이제 거의 다 됐는데 카게야마를 만나는 바람에 다 엉망이 되어버렸다

카게야마는 예전과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바보 같은 점이나, 자신과 키가 4cm 차이 나는 점 같은 것들.

전과 별로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카게야마를 보고 있으면 자신도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러나 카게야마는 전과는 달랐고 결국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잡지를 버렸던 것처럼, 카게야마를 보며 과거를 더듬는 것도, 그리고 상패도, 아마 버려야만 하는 것일 거다.


오이카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것처럼 보이는 먼지들을 보다 상패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았다. 반딧불, 카게야마 토비오, 상패. 금빛으로 반짝이며 빛나는 것들. 그는 상패를 다시 서랍 안에 넣고 자물쇠를 잠갔다


내일 버리자. 내일은 꼭 버리자.

 


 

오이카와는 상패가 들어있는 서랍장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하루 종일 다슬기를 찾아다니는 카게야마를 따라다녔더니 배가 고팠지만 손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다.


식탁에 빵 있는데.”


역시 냉장고에 넣어둘 걸 그랬나. 예전이었으면 하루 만에 다 먹었을 텐데. 움직이고 싶지는 않아서 손가락으로 휴대폰 화면만 휙휙 돌리고 있던 오이카와는 갑자기 울리는 진동에 놀라 화면에서 손을 떼고 휴대폰을 들었다. 직장 상사에게서 온 전화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이카와씨? 지금 통화 괜찮아요?

, 대리님. 무슨 일인가요?”

다른 게 아니라 어제 거래처에 보냈던 엑셀 파일 말이에요. 품목이 하나 누락된 것 같다고 거래처에서 연락이 왔거든요.

, 죄송합니다!”

아냐, 아냐 괜찮아요. 그쪽에서 저한테 다시 파일 보내줬으니 제가 이메일로 보내줄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수정해서 바로 보내겠습니다!”

그렇게까지 할 건 없고 그냥 월요일까지만 넘겨주면 돼요. 그쪽 이메일은 알고 있죠?

!”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자마자 잠시 동안 무릎을 끌어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난 왜 이리 형편없지? 일도 똑바로 못 하고.”


하필이면 이런 타이밍에 또 제 무능력함을 보여주는 일이 터질 게 뭐람. 설움에 눈가가 시큰거려서 오이카와는 눈을 깜빡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엑셀의 하얀 배경이 눈물 나게 시렸다.

 


 

누락된 항목을 추가하고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본 뒤 파일을 저장하고 나니 날이 아주 저물어 있었다. 그는 창가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햇빛이 가시자 거짓말처럼 먼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거기에서 시선을 거두고 인터넷 창을 켰다. 배가 너무 고팠다. 빨리 메일을 보내고 나서 뭐든 먹고 싶었다. 오이카와는 한숨을 쉬며 이메일에 파일을 첨부했다. 이제 메일 주소만 입력하고 보내기만 하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던 오이카와의 손이 멈췄다.


메일 주소


그는 최근 주소록을 뒤져보았으나, 어떤 게 거래처 메일 주소인지 알 수 없었다.


명함명함을 어디 넣어뒀


분명 셔츠 앞주머니에 넣어뒀던 것 같은데 명함이 없었다. 어디에 흘린 건가?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을 깨물었다. 할머니네 거실에 명함을 빼둔 게 떠올랐다


어쩌지? 대리님한테 전화를 해봐야하나? 아니 그래도 휴일인데.


고민하던 오이카와는 식탁 위에 둔 열쇠와 크림빵 하나를 집어 들고 신경질적으로 현관문을 열었다. 대리에게 연락을 해보는 편이 빠르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실수로 휴일에 상사가 연락까지 하게 만들고, 이제는 아주 거래처 이메일 주소까지 모르겠으니 알려달라고 연락 하는 건 그야말로 자신이 얼마나 무능한지를 상사에게 대놓고 광고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실수투성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보단 번거로운 게 나았다.


가는데 얼마나 걸리려나? 주말이니 차는 안 막히겠지?


현관문을 잠그던 그는 잠시 손을 멈췄다.

할머니 집엔 카게야마가 있을 터였다. 껄끄러웠다. 그러나 오이카와는 열쇠를 주머니 안에 넣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괜찮아. 토비오는 상패 같은 거야. 상패가 아무리 반짝여도 서랍장 안에 넣어버리면 그게 얼마나 빛나는 지 안 보이잖아. 토비오도 마찬가지니까 신경 쓰지 말자.

 

* * *

 

오늘만 버스를 몇 번을 타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오이카와는 차에서 내렸다. 이 정류장도, 정류장에서 할머니 집에 가는 길도, 몇 번 와봤다고 벌써부터 익숙했다. 파란 대문이 보이기도 전에 개가 짖는 소리가 먼저 들렸다. 카게야마에겐 좋다고 꼬리를 흔들어도 저를 보면 으르렁대는 강아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며 오이카와는 파란 대문 앞에 섰다. 대문은 잠겨있지 않은 모양인지 그냥 노크를 하려던 그의 손짓에 끼익하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누구요?”

, 안녕하세요.”


오이카와는 대문에 손을 대고 있는 어정쩡한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


좀 전에는 말없이 그냥 가버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아. 들어와요. 근데 토비오는 아까 일이 생겼다면서 나갔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두고 간 게 있어서 온 거라서 그것만 가지고 금방 갈 거예요.”

두고 간 거? 혹시 명함? 거실에 둔?”

.”

안 버리길 잘했네. 가져올 테니 어디든 앉아 있어요. 차도 한잔 가져올게.”

아뇨, 차는 괜찮아요.”


그는 집 안으로 들어가는 할머니를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발을 올려둔 현관 문턱에 살짝 걸터앉았다. 백구는 목줄을 해두지 않았는지 마당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나비를 쫓고 있었다.


자 여기 있어요.”

감사합니다.”


오이카와는 거래처 회사명이 찍혀있는 하얗고 빳빳한 종잇조각을 받아들고 확인했다.


그거 맞나?”

맞아요. 감사합니다.”

근데 좀 의외네요. 토비오 선배라길래 배구 쪽 일을 할 줄 알았는데.”


할머니가 내뱉은 말에 명함을 앞주머니에 넣으려던 오이카와의 손이 멈췄다. 그는 꼭 호흡하려는 금붕어처럼 입을 몇 번 뻐끔거리다 겨우 대답했다.


했었죠. 배구.”


입 안에 가시라도 돋친 듯, 단어 하나하나를 뱉을 때마다 혀끝에서 찌르르하고 날카로운 통증이 올라왔다. 그래도 그는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말을 멈추지 않았다.


. 했었어요. 지금은 하진 않고, 예전에. 예전에 했었죠.”

왜 그만뒀는데?”


뒤를 돌아보자 호기심과 걱정이 반반씩 섞인 얼굴이 보였기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저런 시선은 불편했다. 경기는 어땠어? 잘했어? 이겼어? 그런 류의 호기심이 아니라, 어쩌다 그렇게 되었냐는 걱정이 섞인 호기심이.


그러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는 자포자기로 내렸던 결론을 할머니에게도 내놓았다.


그냥 뭐배구를 계속 할 운명이 아니었나보죠. 저는 토비오처럼 천재인 것도 아니었고그렇다고 운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오이카와는 주머니에 넣으려던 명함을 내려다보다 주먹을 쥐었다. 손 안에서 명함이 와그작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할머니.”

?”

토비오가 유럽 팀한테도 스카웃 제의를 받았던 거 아세요?”

알죠.”

그럼그럼 할머니 때문에 유럽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온 것도 아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고 오이카와는 후회했다. 제 머리 위를 무겁게 짓누르는 침묵에 고개 숙인 채, 그는 사과를 하기 위해 다시 입을 열었다.


죄송해요. 할머니를 탓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정말이에요. 그냥, 그냥.”


오늘은 한없이 비참하고 추한 인간이 되고만 있는 것 같았다. 아침에 버스를 잘못 탔을 때부터 모든 게 엉망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냥저도 유럽에 가고 싶었거든요근데 토비오는 갈 수 있었는데 안 가서배구밖에 모르던 앤데, 그런 애가 그 좋은 기회를 포기했다는 게아니, 그것보다도 저는 못 가는 유럽을 이번 기회가 아니라도 언제든지 갈 수 있다고 말한 게 너무너무


횡설수설 말을 늘어놓던 오이카와는 이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 바보가 된 것 같다. 토비오 때문이었다. 다슬기를 먹으면 빛날 수 있냐는 토비오의 바보 같은 물음에 자신까지 바보가 되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니에요. 방금 한 말들은 전부 잊어주세요. 죄송합니다.”

유럽에 가고 싶었나 봐요?”


유럽에 가고 싶었냐고?


그야 당연히 가고 싶었다. 인터넷으로 유럽 팀들의 이름이나 유니폼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메모까지 해둘 정도였다. 동료들은 유럽 같은 뜬구름 잡는 소리 하지 말고 실업팀이나 제대로 알아보라고 했고, 오이카와도 그게 맞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면 유럽 팀들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저 자리에 내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그만두지 않았다. 유럽에 딱히 좋아하는 팀이 있거나 꼭 유럽리그에서 싸워야하는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그는 유럽리그에 서는 걸 꿈꿨다.


유럽리그는 큰 무대니까. 전국대회보다 훨씬 큰 무대였으니까.


가고 싶어도 못 들어가요.”

아니 왜요?”

부상을 당해서 다시는 선수로 못 뛰거든요.”

저런.”


할머니의 음색엔 동정이 섞여있었기에 오이카와는 일부러 밝은 척 대답했다.


근데 괜찮아요. 어차피 계속 선수로 뛰었어도 유럽엔 못 갔을 거예요.”


그는 단 한 번도 큰 무대에 서본 적이 없었다.


저는 전국대회에도 나가본 적 없거든요.”


그는 구겨진 명함을 펴기 시작했다. 배구를 하지 않는 오이카와 토오루에겐 거래처의 이메일 주소가 필요했다.


그러니까 괜찮아요. 아까 한 말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죄송해요.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요. 배구에 이제 미련 갖지 말아야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도, 가끔씩 이럴 때가 있어서.”

유럽에 그렇게 가고 싶었으면 언제든 가면 되잖아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했기에 오이카와는 순간 그녀가 자신의 말을 잘못 알아들은 줄만 알았다.


할머니, 저는 유럽에 관광하러 가고 싶다는 게 아니라

배구를 하러 가고 싶은 거 아닌가요?”

그렇죠.”

그럼 가면 되지.”

아까도 말했듯이 부상을 당해서 더는 선수로는

선수가 아니라도 코치나 감독으로 가는 방법도 있고.”

제가요? 제대로 된 경력 하나 없는데? 토비오라면 나중에 선수 은퇴하고 나서 감독으로 갈 수도 있겠지만 전 아니죠. 못 가요.”


그는 다시 펴서 꾸깃꾸깃해진 명함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런 헛된 희망에 낭비할 시간 없어요. 학창시절도 낭비했으니까요.”


그리곤 소리를 내 웃었다. 자조적인 웃음이었다.


배구 할 시간에 공부를 더 했더라면 지금쯤 더 좋은 회사에 들어가서 훨씬 더 잘 살지 않았을까요? 하하.”

낭비라니? 그게 왜 낭비야. 열심히 했는데.”

낭비죠. 결국 저한테 남은 게 하나도 없는데.”


그는 이제 비어버린 손을 한번 쥐었다 폈다.


열심히 해봤자 아무것도 남는 게 없으면 낭비예요.”

왜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없더라도, 정말로 뭔가에 열심이었다면 결국 그 노력하는 습관이라도 남았을 텐데.”


오이카와는 회사 동료들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오이카와씨는 성실하네요.’, ‘보기랑 다르게 완전 노력파라니까.’, ‘뭘 해도 잘 하겠어요. 그렇게 열심이니까.’

그는 한 번 더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 안에 뭔가가 잡히면 좋으련만.


노력하는 건그런 것쯤은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게 얼마나 대단하고 중요한 건데. 스스로의 가치를 깎아내리지 말아요.”

.”

아무것도 안 남은 게 절대 아니야.”


그는 아무 말도 않고 눈을 감고 있다가 조금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배구는 이제 정말 더는 안 떠올릴 거예요. 떠올려봤자 득 될 게 하나 없으니까.”


감았던 눈을 뜨자 마당에서 여전히 뛰어다니며 놀고 있는 백구가 보였다. 아직도 그들 사이엔 멀찍한 거리감이 있었다. 백구는 여전히 그를 반기진 않았다. 위로로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따뜻한 말에 응어리진 기분이 좀 풀린 오이카와는, 단단하게 얼어있던 얼음이 녹을 때처럼 제 머릿속에 축축하게 스며드는 생각들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솔직히 토비오가 부러워요. 배구를 할 수 있는 것도 부럽지만 뭔가를 결정 내리는 데 망설임이 없는 것도, 결정하고 나면 다른 곳으론 눈을 돌리지 않는 것도 부러워요. 천재인데다 한눈팔지도 않으니까아마 유럽에도 가고 금방 정상에 서겠죠.”

총각도 설 수도 있는데 왜.”

할머니는 특이하시네요. , 나쁜 뜻은 아니고, 다들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고 했거든요.”

다른 사람들이 왜 그렇게 말했는지 이해가요. 그게 현명한 선택이긴 하지.”


할머니는 갑자기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약을 한웅큼 꺼내 삼켰다.


괜찮으세요?”

난 괜찮아. 오히려 총각이야말로 괜찮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안 괜찮은 것 같은데.”

제가요? 전 정말 괜찮

배구가 하고 싶은 거 아니에요?”

그야 하고 싶죠. 하고는 싶은데


그는 할머니의 말을 떠올렸다. 그런가? 나는 안 괜찮은 건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어요.”


오이카와는 아직 굳은살이 박혀있는 커다란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뭘 하고 싶은지는 저도 알아요. 제 일이니까.근데 뭘 해야 할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불투명한, 아니 아예 깜깜한 배구인생.


배구에 미련을 계속 가지고 있는 건 추한 일이다. 나이를 먹어서도 억지나 부리는 꼴불견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도 또 다시 스포츠의 이분법에서 패배자로 분류되는 게 두려웠다. 부상 때문에 재활에만 1년을 허비했고, 졸업하자마자 허겁지겁 취업하고 일부러 한국지부로 지원했다. 일본에 있으면 패배자에게 보내는 동정어린 시선을 받아야 했다. 견디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베스트 세터 상패만큼은 가져왔다.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조금 돌아서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가보는 것도 나쁘진 않아요.”

돌아가요?”

, 똑같은 목적지라도 1번 버스를 타면 30분이 걸리고 1-1번 버스를 타면 50분이 걸리기도 하잖아요? 1번 버스나 1-1번 버스나 목적지에 도착하는 건 똑같은데, 다만 1-1번 버스는 길을 돌아서 더 많은 정류장을 지나치는 것뿐인걸.”

그런 식으로 계속 많은 정류장에 멈춰서니까 1-1번 버스는 1번 버스를 따라잡지 못하는 거 아니에요?”


그는 오늘 버스를 잘못 탔던 바람에 결국 약속 시간에 늦은 것을 떠올렸다. 카게야마는 25분이나 그를 기다려야했다. 그러니까 그건 잘못 탄 버스였다.


버스가 정류장에 멈춰서는 이유는 거기에 꼭 태워야 할 소중한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녀의 말에 오이카와는 정전기가 올 때처럼 찌르르한 감각이 가슴 속에 퍼지는 걸 느꼈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을 태우려고 조금 돌아가는 것뿐이에요.”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따뜻하고 축축한 것이 닿았다. 백구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그에게서 떨어져서 뛰어놀고 있던 백구가 다가와서 그의 손을 핥아주고 있었다. 재롱을 피우는 것도 같았고, 상처 난 곳을 핥는 것도 같았다. 오이카와는 한참이나 말없이 앉아있다 작게 배구야하고 강아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백구가 멍하고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강아지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면서 서랍 안에 넣어둔 상패를 떠올렸다. 너무 눈부셔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 * *

할머니가 돌아가신 건 바로 그 다음 날이었다.

 

* * *

 

오이카와가 그 연락을 받은 건 점심시간 때쯤이었다. 우유를 사와 세 개씩이나 남은 빵을 남김없이 먹고 오랜만에 스트레칭을 하고 있었을 때 카게야마에게 연락이 왔다. 아침에 간병인이 왔을 땐 이미 돌아가 계셨다고 한다.


할머니 기침 많이 하셔서, , 잘 못 주무시는, , 흐윽, 다행히 편안한 얼굴로 가셨다고기침, 안 하셨,


울고 있어서 말이 계속 끊겼지만, 그는 카게야마가 울먹이면서 말하는 장례식장 위치를 정확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부랴부랴 택시를 타고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보인 건 건물 밖에 쪼그려 앉아있는 카게야마였다.


토비오.”

오이카와상.”


오이카와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카게야마는 고개를 들었다. 눈이 토끼처럼 새빨개져있었다.


죄송합니다. 생각해보니 오이카와상한테까진 연락할 필요 없었는데근데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게 오이카와상이라고 해서그래서.”

그래.”


카게야마의 입술이 떨리는 걸 본 오이카와는 양복 주머니 안을 뒤졌다. 손수건은 없었지만 전에 편의점에서 샀던 티슈가 있었다. 그는 그걸 카게야마에게 내밀었다.


티슈 줄까?”

감사합니다.”


카게야마는 오이카와가 건넨 티슈를 받아 코를 팽 풀었다.


갑자기 중학교 때 떠오르네.”

중학교 때요?”

그때 네가 나한테 티슈 줬었잖아.”

제가요? 왜요?”

내가 울고 있어서.”


카게야마는 기억을 더듬는 듯 눈가를 찌푸렸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납니다.”

그래. 토비오쨩은 예나 지금이나 바보니까.”


오이카와는 팔을 뻗어 커다란 손으로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른들이 입는 까만 양복을 입고 있는 후배의 머리는 여전히 동그랗고, 자신보다 조금 낮은 곳에 있었다.


동사무소에 가보니 먼 친척이 있긴 하다고 해서 연락했어요. 화장을 하기로 한 날에는 올 수 있을 것 같대요. 원래는 묘에 묻어드리고 싶었는데, 제가 일본으로 돌아가면 묘를 관리해줄 사람이 없어서 화장하기로 했습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서, 카게야마는 티슈로 눈가를 문질렀다.


여기예요.”


카게야마는 입구에 큰 화환이 놓여 있는 곳에서 멈춰 섰다. 하얀 국화꽃 위로 늘어진 리본에 까만 글씨로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고 써져 있었다. 카게야마네 배구팀이 보낸 것 같았다. 근조화환을 뒤로하고 방 안으로 들어간 오이카와는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사람이 많았다. 누구냐고 물으니 카게야마는 동료들이라고 대답했다.


제가 팀에서 제일 막내라 다들 많이 챙겨주시거든요.”


앉아있던 사내 중 하나가 카게야마의 눈가가 붉은 걸 보고 손수건을 내밀었으나, 카게야마는 그에게 고개를 저으며 티슈 받았어요.” 라고 말했다. 그걸 본 오이카와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멀쩡한 넥타이를 고쳐 맸다.


검은색 넥타이를 고쳐 매고 영정 앞으로 걸어간 그는 조심스레 향을 피웠다. 향 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올랐다

오이카와는 할머니를 맨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눈처럼 하얗게 센 머리를 비녀로 틀어 올린 그녀는 꼭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신령님 같았다. 신령님은 곤란한 사람들을 도와주고는 연기처럼 사라져버린다


향의 불을 끈 그는 남은 연기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하얗게 피어오르는 연기는 위로 올라가다, 곧 제 역할을 다 했다는 듯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그 광경을 보고 있으니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오이카와는 절을 한 뒤 구석에 앉아 아까 카게야마가 그랬던 것처럼 눈가를 문질렀다. 그러고 있으니 카게야마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그에게서 받은 티슈를 다시 내밀었다.


오이카와상. 어제 할머니랑 무슨 얘기 하습니까?”


그는 카게야마가 내민 티슈를 한 장 뽑아 손에 쥐고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토비오쨩, 이제 배구가 나도 좋아한다?”

?”

카게야마, 감독님 오셨어.”


카게야마는 오이카와와 더 대화를 나누고 싶은 눈치였으나, 감독님이 오셨다는 말에 아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막 도착한 감독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카게야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네는 것을 본 오이카와는 처음으로 카게야마가 유럽 대신 이곳에 오는 걸 택했던 게 어쩌면 아주 나쁜 선택은 아니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가 기대고 앉은 벽 쪽 창가에서 햇빛이 들어왔다. 방 안을 떠다니던 먼지들이 여름의 햇빛에 반짝이는 게 보였다.

 

 

오이카와는 그 작은 먼지들을, 빛을 받으면 언제든 다시 반짝일 수 있는 존재들을, 평소보다 아주 조금 더 따뜻한 눈빛으로 보고 있었다.

 




 

‖ 에필로그 

 


오이카와 토오루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초조한 얼굴로 병원 로비에 앉아있던 오이카와는 데스크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자 몸을 벌떡 일으켜 진료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얼마 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병원을 나섰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시 검사를 받아봤지만 여전히 재활로 일상생활에는 지장이 없고, 취미로 운동을 하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선수로 뛰는 건 무리라는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역시나 기적은 없나.”

 

* * *

 

거래처에서 연락 왔는데 오늘까지 물건 보내줄 수 있냐는 데요?”

그거 오전에 다 나갔을 텐데내일 오후에 보내준다고 해.”


사무실 안은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프린트에 복사용지를 채워 넣고, 흘러내리는 사원증 목걸이를 셔츠 앞주머니에 꽂은 다음 프린트 복사 버튼을 눌렀다. 복사되어 나온 종이들을 앞뒤로 확인하고 스테이플러로 찍고 있는 그를 옆자리 동료가 불렀다.


오이카와씨! 전화 오는 것 같은데.”

?”

전화요. 전화.”


동료가 손으로 전화를 받는 시늉을 하자 그제야 알아들은 오이카와는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며 미처 채 정리하지 못한 종이들을 가지고 부랴부랴 자리로 돌아왔다. 책상 위에 둔 휴대폰이 진동하고 있었다. 그는 종이뭉치를 내려놓고, 급한 마음에 번호도 확인하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 여보세요?”

오이카와상.”


휴대폰 너머로 들리는 일본어에 오이카와는 화면을 확인했다. ‘토비오


무슨 일이야, 토비오쨩?”

바쁘신가요?”

바쁘긴 한데무슨 일 있어? 토비오쨩 지금 일본 아니야?”


오이카와는 이틀 전에 일본 배구팀 감독이 대표 선수들을 소집했다는 소식을 스포츠 채널에서 들었던 걸 생각해냈다.


. 지금 일본입니다. 오늘 저녁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래? 조심해서 돌아와.”

그래서 말인데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나한테?”

. 오이카와상 오늘 일 끝나고 바쁘십니까?”

아니. 오늘은 퇴근하면 딱히 무슨 일 없어.”

그럼 퇴근하시고 할머니 댁에 좀 들러주실 수 있나요? 거기 위치를 아는 사람이 오이카와상 뿐이라서.”

거긴 왜?”

배구 때문에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꼼짝도 안 하고 밥도 안 먹는다고 아까 연락이 왔는데 저는 한국에 아무리 빨라도 8시에나 도착할 것 같아서. 먼저 가서 배구 상태 좀 봐주실 수 있나요?”


오이카와는 결국엔 자신의 손을 핥아주던 하얀 강아지를 떠올리며 대답했다.


그래. 끝나고 바로 가볼게.”

감사합니다.”

근데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부터라면일주일 넘게 아무 것도 안 먹었다는 거야?”

그런가 봐요. 저도 그 이후에 바빠서 못 찾아갔었는데 평상시엔 잘 따르던 옆집 아저씨가 주는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신다고병원에라도 데려가 봐야 할 것 같아서 집 밖으로 끌고 나오려 했더니 물려고까지 했대요.”

그럼 내가 간다고 해도 별 다를 건 없을 것 같은데.”

오이카와씨, 복사 다 했어요?”

, ! 금방 가져갈게요! 토비오쨩 미안, 끊어야 할 것 같아. 퇴근하고 바로 가볼게. 거기 가서 보자.”

감사합니다.”


오이카와는 전화를 끊자마자 재빨리 종이뭉치들을 나눠 스테이플러로 찍으면서 계속 시간을 확인했다. 배구는 괜찮으려나.


 

 

5시부터 안절부절 못하던 오이카와는 6시가 되자마자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데이트라도 있냐는 동료들의 짓궂은 물음을 뒤로하고 빠른 걸음으로 역을 향해 걷던 그는 길가의 애견샵을 보고 발을 멈췄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사료가 맘에 안 들어서 안 먹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게에 들어가 요즘 TV 광고에 자주 나오는 애견용 통조림과 간식 몇 가지를 고르고 나온 오이카와는 지하철을 기다리는 내내 간식이 담겨있는 봉지 안을 들여다보다,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 지하철 안으로 들어갔다.


실 뭉치가 꾹꾹 눌러 담긴 바구니 같았던 4호선 지하철은 역을 지나면서 실타래를 풀기도 하고, 감기도 하다 미아역쯤 와서는 거의 비어버렸다. 혼자 종점을 앞두고 있는 오이카와는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시간을 확인하고 화면을 끄자 까만 화면 위로 아직도 선명한 햇살이 그의 모습을 비췄다.


이번 역이 종점이라는 안내 방송을 들으며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도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버스를 타고 20분이나 가야했다. 전철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실타래는 무척 바쁜 사람처럼 발을 동동 구르고 계속 시간을 확인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여름이었다. 해는 길었고, 날은 더웠다.


에어컨을 틀어놨어도 버스 안은 후덥지근했다. 오이카와는 한 손으론 버스 손잡이를 잡고 한 손으론 가방과 비닐 봉투를 쥐고 가다가도 버스가 잠깐씩 멈춰 설 때면 손잡이를 잠시 놓고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사람들 틈에서 겨우 벨을 누르고 정류장에 내린 그의 눈앞에 파란 대문이 그려지는 듯했다.


뛰어가면 10분이랬던가.


오이카와는 정류장에 서서 제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으며 크게 한번 심호흡을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미지근한 바람이 그의 뺨을 스쳤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최근, 아니 재활 훈련이 끝나고 나서도 그는 제대로 달려본 적이 없었다. 뛸 수 없다. 더는 선수로는 뛸 수 없다. 그 말이 족쇄처럼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특별했다. 그는 잘 정돈된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는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파란 대문 앞까지 달렸다.


 

 

집 안에서 언제나처럼 백구가 짖는 소리가 났다. 다행히 짖지도 못할 만큼 기력이 없는 건 아닌가 보다고 안심하며 오이카와는 대문을 두드렸다. 조금 거칠어진 숨을 고르고 있으니 낯선 사람이 문을 열었다. 설원처럼 하얗게 센 머리가 아니라 새까맣게 염색을 한 머리의 사내였다.


, 안녕하세요. 토비오한테 연락을 받고 왔는데.”

그 선배라는?”

.”

들어와요. 난 저 옆집 사는 사람인데 이 집 나가기 전까지만 잠깐 봐주고 있어요.”


옆집을 가리키며 자신을 소개한 사내는 마당 쪽을 보며 혀를 찼다.


백구도 봐주기로 했는데, 저 녀석 평소에는 그렇게 나한테 애교도 부리고 잘 따르더니 이 집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부터는 내가 불러도 꿈쩍도 안하고 지 집에만 틀어박혀 있지 뭐야. 밥도 안 먹고 물도 안 마시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만 짖고 정말 꿈쩍도 안 해.”


사내는 개집을 향해 얌마! 백구!”하고 소리쳤으나, 백구는 정말로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도 얼마 전에 돌아가셨는데 개까지 따라 죽으면 내가 마음이 어떻겠어. 그래서 그 바쁜 청년한테까지 연락을 한 거야. 그 청년만 오면 쟤가 막 신이 나서 졸졸 쫓아다녔으니까.”


백구는 개집 깊숙이에 들어가 있는지 잘 보이지가 않았다. 오이카와는 그 그늘진 집 안쪽을 보고 있다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제가 한번 불러 봐도 될까요?”

안 나올 텐데.”


오이카와는 병원에서 진단결과만을 기다렸던 때처럼 불안함이 피어오르는 걸음걸이로 개집 근처로 다가갔다. 그는 그 앞에 쪼그려 앉아 손을 내밀고는 혀끝의 떨림을 삼켰다.


배구야.”


까만 그늘 안에서 하얀 것이 슬금슬금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용기 내어 조금 갈라진 목소리로 다시 한번 강아지를 불렀다.


배구야.”

!”


화답 받지 못할 줄 알았던 그의 부름은 새하얗고 따스한 것으로 돌아왔다.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그에게 다가오는 백구를 보며 오이카와는 하얀색의 병실을, 스포츠에 선택받지 못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그리고 기적을 바라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그는 아직 굳은살이 박혀있는 손으로 백구를 안아들었다.

백구를 안아들기 위해, 붕 떠오른 괴로웠던 순간들을 풍선처럼 날려 보내면서.


배구야.”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 눈가까지.

그는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꼬리를 흔들고 있는 강아지에게 말했다.


배구야. 나랑 같이 갈래?”


천재가 아니지만 그래도 천재처럼 빛날 수 있을까요? 열심히 하면 뭔가가 달라질까요?


저는 배구를 계속 해도 되나요?


!”


백구는 그의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축축한 그의 뺨을 핥았다.


아무리 물어도 대답이 없던 것이, 오랜 시간을 지나 드디어 그에게 대답했다. 분명히 기적이었다.

 

* * *

 

배 많이 고팠나보다.”


통조림을 사료에 섞어주자 게 눈 감추듯 한 그릇을 비운 백구가 빈 그릇을 핥다 입맛을 다시며 물그릇에 주둥이를 박고 목을 축였다. 오이카와가 봉투를 뒤져 육포를 꺼내주자 고개를 들고 냉큼 받아먹는 백구를 보고 옆집 아저씨가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거 신기하네. 이 집 청년은 그렇다 쳐도 총각은 여기 처음 오는 것 같은데.”

몇 번 오긴 왔었어요.”

그래도 내가 부를 땐 안 나왔는데. 신기해.”


사내는 육포를 먹고 있는 백구를 쓰다듬으며 속 썩이지 말라고 타박을 줬으나, 그 손길만은 부드러웠다.


육포 한 봉지를 다 먹이고 나서야 오이카와는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 땀이 맺혀있었다.


잠깐 세수 좀 해도 될까요?”

그래요.”


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세면대에 찬물을 가득 채우고 그 안으로 고개를 처박았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차가운 물에 얼굴을 담그고 있다, 숨이 찰 때쯤 고개를 들었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었다. 차갑다. 숨이 막힌다. 찬물에 고개를 처박고 나면 항상 드는 생각이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처음으로 거울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봤다. 얼굴이며, 머리카락이 흠뻑 젖은 채로 거친 숨을 쉬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 숨을 참은 탓인지 안면이 조금 붉어져 있었다. 그 상태로 목에 수건을 둘러보니 꼭 풀 세트로 경기를 치른 사람 같았다. 물에 빠진 생쥐처럼 꼴불견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별로 이상할 것도, 꼴불견일 것도 없어 보였다.


그는 거울 속의 사내에게 씨익 웃어 보이며, 숨을 참았던 만큼 한껏 숨을 들이마셨다.

 

* * *

 

카게야마는 저녁이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공항에서 바로 왔는지 캐리어를 들고 있는 카게야마는, 정류장에서 여기까지 뛰어왔는지 숨을 거칠게 몰아쉬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저에게 달려드는 백구의 머리를 쓰다듬는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걱정할 거 없어. 내가 아까 밥 줬어.”

다 먹었어요?”

.”

아저씨가 밥도 안 먹고 꼼짝도 안 한 댔는데.”

오이카와상처럼 잘생긴 사람이 주는 밥을 먹고 싶었나보지.”


그는 언젠가 카게야마가 했던 말을 떠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 나 잘생겼잖아. 불만 있어?”


오이카와가 뺨을 꼬집자 카게야마는 인상을 찌푸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이대로 아무것도 안 먹고 버티다 큰일이라도 났으면


오이카와는 카게야마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 펴주면서 말했다.


배구는 이제 오이카와상이 데려가서 잘 돌볼 테니 토비오쨩은 걱정할 거 없네요.”

? 오이카와상이요?”

왜 놀라? 네가 데려가려고 했어?”

그러고 싶지만 저희 아파트는 애완동물 금지라서.”

그럼 역시 오이카와상이 데려가는 걸로.”


그는 아저씨에게도 말해뒀으니 오늘 바로 데려가기로 했다는 말을 하며, 살짝 시무룩한 표정의 카게야마에게 말했다.


, 가끔씩 더럽게 귀여운 후배가 놀러 와도 용서해줄게.”

정말요?”


오이카와는 제 말에 반색을 하는 후배의 뺨을 괜히 한 번 더 꼬집었다.


싫음 말고.”

아뇨, 감사합니다!”


뺨이 꼬집혔어도 웃는 카게야마를 본 오이카와는 그 뺨에서 손을 내리고 피식 웃었다.


 

 

백구에게 목줄을 채우고 집을 나서자 주위가 깜깜한 밤이었다. 천천히 걸어 아무도 없는 정류장까지 온 셋은 앉아서 버스를 기다렸다. 곧 환한 헤드라이트를 켠 버스가 정류장으로 다가왔다. 오이카와는 몸을 일으켜 버스 번호를 확인했다. 그가 예전에 뒤에 붙은 -1을 미처 못 보고 탔던 그 버스였다.


토비오쨩.”

?”

토비오쨩은 만약 내가 토비오쨩이 있는 곳에 좀 늦게 가도 기다려줄 거야?”


버스가 그들을 보고 달려오고 있었다

오이카와가 눈부신 불빛을 보고 잠시 눈을 감았다 뜨자, 눈앞에서 멈춘 버스가 문을 열었다.


25분쯤 늦을 거야.”


카게야마는 백구를 안고 버스에 오른 다음, 아직 버스에 타지 않은 그를 돌아봤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은 모르겠는데오긴 온다는 거죠?”

아마도. 아니, . 갈게.”

그럼 기다리겠습니다.”


그의 후배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듯 언제나처럼 흔들림 없는 눈동자였기에 오이카와는 미소를 지으며 버스에 올랐다.

 


 

늦은 시각이었기에 버스 안엔 사람이 얼마 없었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가 2인용의 긴 좌석에 앉자마자 버스가 출발했다. 공항에서 바로 오느라 피곤했는지 카게야마는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졸기 시작했다. 오이카와는 흔들리는 그의 머리를 조심스런 손길로 제 어깨 위에 올려놓았다.


버스는 어두운 밤길을 비추며 달리고 있었다. 창밖의 풍경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버스는 몇 번인가 정류장에서 멈췄다. 그곳에 있는 누군가를 태우기 위해서였다.

오이카와는 그 광경을 보다 고개를 살짝 돌려 제 옆을 바라봤다. 여전히 자신보다 작고, 또 따뜻한 것이 제 왼쪽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발밑에도 쌔근거리며 잠든 자그마한 온기가 있었다.


조금 돌아가는 버스를 탔으니 토비오도 20분은 더 눈을 붙일 수 있겠지.


오이카와는 버스가 크게 덜컹거릴 때마다 제 곁의 존재들이 깨지는 않을까 가슴을 졸이면서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있었다. 중학교 시절부터 쭉 이어져 왔을 온기가 밤길 내내 그의 어깨를 적셨다.

 

돌고 돌아, 마침내 버스가 역에 도착했다.



'HQ! > 조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이카게] 경기inG버스  (0) 2016.02.07
[스가카게] 아이(愛 · I)  (0) 2015.09.07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