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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다이나믹 토오루!

[오이카게] 다이나믹 토오루!-overture-2부-19

SaKuya! 2016. 5. 23. 05:18



19.

래된 나무 계단에선 이는 소리가 났다.


“좋은 아침.”

“일어났냐? 커피 마실래?”

“응.”


하품하며 계단을 내려온 오이카와는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익숙한 그림자를 찾았지만 찾는 이의 모습은 머리카락 하나 보이지 않았다. 


“어라? 토비오쨩은?”

“방에 있는 거 아녔어?”

“아니. 일어나보니 없던데. 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못 봤어?”

“오늘은 못 봤는데?”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붓던 이와이즈미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 검은 액체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혹시 무슨 일이 생기기라도 한 건…….”

“카게야마님이라면 산책하러 가셨는데.”


커피가 잔에서 흘러넘치기 직전, 하녀의 목소리가 불안을 가라앉혔다.


“곧 돌아오시지 않을까요? 식사 준비도 거의 끝나가고.”

“그래요? 그럼 다행이네요.”


오이카와는 안도하며 이와이즈미가 젓지도 않고 건넨 컵을 받았다. 커피는 아슬아슬하게 넘쳐흐르지 않고 있었다.


“설탕 넣었어?”

“어…아니. 물 붓고 넣으려다가……. 지금 거기에 설탕 넣으면 흘러넘칠 것 같으니까 그냥 마셔.”

“너무해!”


오이카와는 샐쭉거리고 커피를 마셨다. 맹탕 수준으로 희석되긴 했지만 여전히 쓴맛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으으…써…….”

“반쯤 마신 다음 설탕 넣음 되겠네.”

“싫어. 그만 마실래.”


이게 커피인지 사약인지 모르겠다고 투덜거리며 오이카와는 컵을 내려놓았다. 검은 표면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창밖은 안개가 거의 걷혀 있었다. 혹시 카게야마의 모습이 보일까 싶어 창문 밖으로 얼굴을 내밀고 살펴보았지만 보이는 것이라곤 포도나무뿐이었다.


“왜 이리 늦으시지? 길이라도 잃으셨나? 안 되겠다. 제가 찾아보고 올게요.”


하녀가 수란이 담긴 접시를 내려놓고 말하자 오이카와는 창문에서 몸을 뗐다.


“아뇨. 제가 찾아볼게요.”

“혼자 가시면 위험할 텐데…….”

“같이 다녀오지 뭐.”


염려 말라며 이와이즈미가 벽에 세워뒀던 검을 들고 오이카와를 따라 일어났다. 




문을 열고 아늑한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오이카와는 까치발을 들고 포도밭을 둘러봤다. 

나무들이 그리 높지 않은 탓에 꽤 멀리까지 보였지만 카게야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위에서 보고 올 걸 그랬나.”

“나왔으니 그냥 찾아보자. 근처에 있겠지.”


두 사람은 밭 옆으로 난 길을 걸었다. 동은 이미 텄고 안개가 걷힐 시간이었으나, 앞으로 나아갈수록 괴이한 안개는 짙어져만 갔다. 해가 떠 있을 터인 동쪽 하늘이 붉었다. 


이와이즈미는 어쩐지 불길한 예감에 메고 있는 검집을 매만져보았다. 축축한 물기가 손끝에 묻어나왔다. 


푸루스로 올 거란 건 신전도 알고 있었겠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한 줄은 아직 모를 거다. 거기다 상회가 아니라 포도원에 있을 거라곤 더더욱 생각도 못 할 테고. 그는 손에 남은 물기를 옷에 쓱 닦아냈다. 아마 괜찮을 거다.


“오이카와! 너무 떨어져서 가지 마.”


앞서가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이 안개 때문에 점점 흐려진다. 서둘러 걸음을 빨리 하는 이와이즈미의 발에 딱딱한 무언가가 탁 걸렸다. 길 위를 굴러다니는 돌멩이는 아니었다. 그는 조금 굴러가다 금세 멈춰버린 물체를 집어 들었다.


“컵? 이런 게 왜 여기에…….”

“왜겠어.”


바로 앞에서 들리는 낮은 목소리에 그는 잔을 던지고 검을 뽑아 들었다. 검이 뽑히며 나는 날카로운 금속음에도 눈앞의 인물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네 녀석이 여긴 어떻게…!”


흰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던 사내는 이와이즈미의 적개심 어린 시선을 받으며 후드를 벗었다. 코즈메 켄마였다. 


여유까지 느껴질 정도로 느릿한 동작이었건만 이와이즈미는 초조한 듯, 마른침을 삼켰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협력자가 있거든.”

“대체 누가…….”


설마 배신자가 있을 줄이야. 누구지? 상회 쪽인가? 아니면 스가와라?


“카게야마가 사라진 것도 네놈들 짓인가?”


그가 대답하기도 전에 이와이즈미가 이를 갈며 잇 사이로 단어를 하나하나 내뱉었다.


“물을 필요도 없겠군.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오이카와와 카게야마를 내놔.”

“그건 좀 곤란한데…….”

“그럼 더 곤란하게 만들어주지.”


이와이즈미가 인간계에서부터 줄곧 차고 있던 팔찌를 잡아 뜯었다. 금속장식이 달린 마력제어 팔찌였다. 두 개의 금속장식은 떨어지며 빛을 뿜었다. 그 빛이 이와이즈미를 향하자 그의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 눈동자가 붉게 물들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어.”


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어지자마자 계속 나른한 표정을 짓고 있던 켄마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가 동공이 가는 눈을 크게 뜨며 지팡이를 높이 들자 이와이즈미의 주변에서 세 개의 빛이 솟았다. 빛은 빙글빙글 돌다 서로 이어지며 삼각형을 그렸다. 주변에 짙게 끼어있던 안개가 삼각형 안으로 모이더니 거대한 벽이 되었다. 벽은 이와이즈미를 무겁게 짓눌렀다.


“으윽…!”


땅이 파일 정도로 강하게 억누르는 안개에 이와이즈미는 결국 한쪽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죽지는 않을 거야. 그 정도로 강한 마법을 준비할 시간은 없었거든.”

“네 녀석…!”


이와이즈미의 분노에 찬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켄마는 다시 후드를 눌러썼다. 그의 얼굴에 도무지 속내를 알 수 없는 그늘이 드리웠다.


“혼자선 빠져나오기 힘들 걸.”




바로 그 시각, 오이카와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그러나 정체를 알 수 없는 이와 마주하고 있었다. 경계하는 오이카와와는 달리 그는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며 인사했다.


“안녕? 우리 구면이지?”


그가 제게로 성큼성큼 다가오는데도 오이카와는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무언가에, 마치 주변의 안개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마침내 코앞까지 다가온 그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들고 웃었다.


“혹시 이 얼굴도 구면?”


그의 손이 지나간 자리를 따라 갈색머리가 검게 물들었다. 

잠시 고개를 숙였다가 들자 그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있었다.


“아니면 ‘아직’ 초면이려나?”

“초면…이지만 누군지는 알 것 같네.”


오이카와는 떨리는 손을 꾹 주먹 쥐며 두려움을 감추고 억지로 웃어보였다.


“쿠로오 맞지?”

“정답.”

“맞췄는데 상품은 없어?”

“물론 있지.”


오이카와가 던진 허세 섞인 농담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씩 웃었다.


“고통 없이 끝내줄게.”


쿠로오가 오른손을 번쩍 들었다. 그의 손에서 생겨난 검은 구체들이 하나로 뭉치더니 기다란 창의 형태로 바뀐다.


“이걸로 체크메이트야.”


그가 던진 검고 뾰족한 창이 오이카와를 노리고 날아왔다. 등에서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저런 걸 맞았다간 그 자리에서 즉사일 게 뻔했지만, 이 상황에서도 다리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반사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어라?”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쿠로오의 목소리에 오이카와는 감았던 눈을 떴다. 검고 뾰족한 창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혹시 대왕님 힘이 돌아온…건 아닌 것 같은데.”


쿠로오는 오이카와의 발을 묶고 있는 안개가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고 눈썹을 치켜들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우연인가?”

“그럴 리가.”


대답은 등 뒤에서 들려왔다. 흰 안개 사이로 하얀 망토를 펄럭이며 나타난 짧은 은발의 사내는, 두 사람 모두 잘 알고 있는 자였다.


“…스가와라?”


여기 있을 리가 없는 이의 모습에 쿠로오는 급히 품 안을 뒤져 두루마리를 펼쳤다. 지도의 비둘기 표시는 여전히 국경 근처였다. 그럼 어떻게?


“대체 어떻게…국경에서 대치 중인 게 아니었어?!”

“아, 그거? 눈속임이야.”


너무나도 간단명료해서 상큼하기까지 한 대답에 쿠로오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콜룸바 기사단이 불온한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우리도 눈치채고 있었어! 그래서 추적마법 외에도 감시자를 붙여뒀다고! 추적마법은 몰라도 감시자의 눈과 목격자들까지 속일 수 있을 법한 마법사가 푸루스에 남아있을 리가…!”

“푸루스엔 없어도 다른 곳엔 있지.”


쿠로오의 말을 끊은 건 스가와라가 아니었다. 서서히 옅어져가는 안갯속에서 의외의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예를 들면 쿼크누스의 우마왕이라든지.”


국경에서 콜룸바 기사단과 대치 중이어야 할 쿼크누스의 재상이었다. 그가 히죽 웃었다.


“아쉽지만 너희 기사단원들은 콜룸바 기사단원들이 상대하고 있어서 못 올 거야.”


지원이 없을 거란 말에 쿠로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스가와라 뿐만 아니라 콜룸바 녀석들이 전부 움직였어? 쿼크누스도 한패였고? 언제부터? 


생각지 못한 상황이 연달아 일어나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가운데 이전에 대신관에게 올렸던 보고가 번뜩하고 떠올랐다.




‘폴룩스 상단은 영주들에게 재고로 남겨둔 밀을 평소보다 높은 값에 밀짚째로 매입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군마용 말과 고급 종이도 대량으로 사들였다고 합니다.’




밀짚은 그리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고, 말을 사들인 것은 그저 만일을 대비해 군사를 늘리려는 것이라 생각했다. 허나 상회는 군사를 늘리려는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고급 종이. 그의 손에도 고급 종이가 들려 있었다. 마법 스크롤을 만들 땐 잘 손상되지 않는 고급 종이를 사용하니까. 


잠깐, 내가 지금 뭐라고…?




“…스크롤!”




마침내 그의 입에서 그 단어가 탄식처럼 새어나왔다. 


마법 스크롤. 상회는 스크롤을 만들기 위해 종이를 대량으로 구매한 거였다.


제아무리 우마왕이라 하더라도 단시간에 군대의 이동 흔적까지 남기는 눈속임 마법을 준비하고 원거리에서 계속 지속하는 건 힘들다. 켄마조차도 포도원 일부를 감쌀 안개와 이와이즈미의 발을 묶을 트랩을 준비하는 데 꼬박 하루가 걸렸으니. 


특히나 왕이 마법을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자리를 비운다면 모두가 의아하게 여길 테니 신전도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하지만 흔적을 남길 필요도, 장시간 지속 마법일 필요도 없다면?




우선 밀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말 위에 고정시킨다. 그리고 추적마법을 허수아비에 옮기고 거기에 눈속임 스크롤을 붙인다. 말이 이동하면서 흔적이 남기 때문에 굳이 흔적을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 그리고 마법을 굳이 지속시킬 필요 없이 스크롤의 효력이 다 하면 새 스크롤을 붙이면 그만이다.


“…처음부터 한패였군.”


뒤늦게 속았다는 것을 깨달은 쿠로오에게 재상은 팔짱을 끼고 깐죽댔다.


“어쩔래? 2대 1인데 그냥 항복하지그래?”

“…2대 2야.”


허나 쉽게 함락되지는 않을 모양인지, 남아있던 안개가 한 곳에 모이더니 켄마가 걸어 나왔다.


“그리고 이쪽은 인질도 있어.”


인질이라는 말이 나오자 오이카와의 입에서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토비오는 어디 있어?! 혹시 해치기라도 했다면…!”

“해치지는 않았을 거야. 쿼크누스와의 관계를 더 악화시킬 생각이 아닌 이상에야.”


스가와라가 침착하게 오이카와를 달래자, 켄마는 상체를 앞으로 약간 숙이고 속삭이듯 나직하게 말했다.


“지금까지는 그랬지만 우마왕이 너희 편인 걸 안 이상 우리가 카게야마를 건드리지 못할 이유도 없지.”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간 가만 안 둬.”


분노를 애써 억누르며, 오이카와는 싸늘한 눈빛으로 켄마를 노려봤다. 스가와라도 칼끝을 쿠로오와 켄마에게 겨누었다. 무언의 동의였다.




“…너네, 내 걱정은 안 하냐?”


짜증 섞인 친숙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목소리만큼이나 잔뜩 짜증 난 얼굴의 이와이즈미가 어깨를 주무르며 등장했다.


“내가 왜 네 걱정을 해줘야 해?”


제일 먼저 입을 연 스가와라가 천연덕스럽게 이와이즈미를 약 올리자, 오이카와는 이와이즈미의 눈치를 보며 윙크했다. 


“난 이와쨩이 무사할 거라 믿고 있었어!”

“얼씨구.”

“난 안 무시했어. 마법 풀어줬잖아.”


뿌듯함마저 느껴지는 음성에 이와이즈미는 얼굴을 홱 돌려 쿼크누스의 재상이자 제게 걸린 마법을 풀어준 텐도에게 따졌다. 


“뭐 임마?! 진짜로 마법만 달랑 풀어주고 혼자 가버린 놈이?! 아직도 온몸이 쑤신다!”

“엥? 풀어줬으면 됐잖아.”

“…어떻게 된 게 우리 편이라는 놈들은 죄다 인정머리가 없냐.”


이와이즈미는 신경질스럽게 검을 뽑아 들고, 우리 편이 아닌 놈들에게 겨누었다.


“어쨌든 이제 3대 2다.”


당장에라도 서로에게 달려들 것 같은 분위기였지만 누구도 쉬이 발을 떼지 못했다. 끊어지기 직전의 팽팽하게 당겨진 줄 같은 분위기와 무거운 공기. 


꿀꺽.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근데 말이야, 우리에게 칼을 겨누는 건 신전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뜻이야?”


흐름을 제게 유리하게 돌리고 싶은 것인지 쿠로오가 신전을 운운하며 나섰다.


“비리디아에서 신전의 위치는 절대적인 거 알지? 콜룸바 기사단과 쿼크누스가 손을 잡고 카투스 기사단을 공격한 걸로도 모자라, 실종되었던 대왕님이 우마왕과 편먹고 쿼크누스에 있다고 밝혀지면 어떻게 될까? 응? 이번에야말로 정말 전쟁이 날지도 모르겠네?”


물론 스가와라와 쿼크누스는 신전 측이 대왕을 제거하려 들었고 자기들은 대왕과 카게야마를 보호한 것뿐이라고 말하겠지만, 이쪽도 정치에 개입할 수 없는 신전이 대왕을 제거하려 들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우기면 되는 일이다. 


이전에 용사 일행을 이용해 대왕을 제거했을 당시의 기록은 관계자들 외엔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그 기록을 가지고 있는 ‘관계자’에 카게야마와 이와이즈미는 포함되지 않는다. 


게다가 이번에 푸루스에 온 것도 공식적으로는 어디까지나 ‘시찰’일 뿐이다. 시찰 중인 신전 기사단을 공격하면 선전포고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아직 승산은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는 달리 스가와라는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아니. 전쟁은 나지 않을 거야. 우리에겐 명분이 있거든.”


허공에서 두루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돌돌 말려있던 종이가 그의 손짓을 따라 촤르륵 펼쳐졌다.


“그, 그건…!”

“그래. 신전이 용사 일행을 이용해 대왕님을 제거했던 당시의 극비 문서들이지. 다른 것도 있는데 보여줄까?”


그가 한 번 더 손가락을 튕기자 새로운 두루마리가 나타났다. 


거기엔 마계로 돌아온 오이카와를 제거하라는 내용이 적혀있었고, 결정적으로 첫 번째 두루마리에도, 이번 것에도 가장 밑에 대신관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신전은 정치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


스가와라의 말에 쿠로오의 몸이 움찔했다.


“우리 콜룸바 기사단은 금기를 어긴 신전을 바로잡으려는 것뿐이고, 쿼크누스는 카게야마까지 이용한 대신관에게 분노해 우리를 도왔다…고 하면? 그래도 귀족들이 대놓고 너희 편을 들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스가와라가 손목을 이용해 칼을 빙빙 돌리며 생긋 웃었다. 단순한 동작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로 위협적이었다.


“…그 문서는 대체 어떻게 손에 넣은 거냐? 난 못 찾았는데.”


그리고 이 계획도 자기는 들은 적 없는데 대체 언제부터 쿼크누스와 손을 잡은 거냐는 이와이즈미의 투덜거림에 텐도는 나름대로 친절하게 답해주었다.


“너한텐 알려줄 필요도 없었나 보지.”

“저, 저 우시와카의 앞잡이 놈이…!”


방금까지만 해도 팽팽하게 균형을 잡고 있던, 아니 균형을 잡고 있는 줄만 알았던 흐름이 완전히 오이카와 쪽으로 넘어가자 쿠로오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대체……대체 어떻게 그걸…….”

“협력자가 있거든.”


스가와라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여전히 칼을 빙빙 돌리고 있는 채로.


“그럼 아까 네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줘 볼까?”


그는 칼을 돌리는 것을 멈추고, 다시 쿠로오에게 칼을 겨누었다.


“체크메이트다.”


복잡하게 얽힌 체스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타난 나이트가 대각선으로 킹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게임이란 끝나기 전까진 한치 앞도 모르는 법이다.




“다들 움직이지 마.”


켄마는 그들의 생각보다 훨씬 유능한 플레이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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