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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다이나믹 토오루!

[오이카게] 다이나믹 토오루!-overture-2부-15

SaKuya! 2016. 4. 29. 19:11







15.

“…토비오쨩, 아침부터 왜 그런 열렬한 눈으로 오이카와상을 보고 있어?”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잠에서 깨자마자 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는 카게야마를 보고 오이카와가 인상을 쓰자 카게야마는 화들짝 놀라며 떨어졌다.


“뭐야, 어제 책에서 나 배신하는 장면이라도 봤어?”


그가 심드렁하게 던진 말에 카게야마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되물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토비오쨩이 갑자기 죄인처럼 내 눈치 볼만한 일은 그것뿐이잖아.”

“역시 오이카와상은 훌륭한 세터…!”


카게야마가 진심으로 감탄하자 오이카와의 입술 사이로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가 났다.


“토비오쨩은 진짜 한결같네. 이 상황에서도 세터 운운이라니 어떤 의미론 정말 굉장해.”

“아뇨, 그 정도까진…….”

“칭찬 아니니까 그렇게 수줍어할 거 없어.”


오이카와는 단호한 어조로 카게야마의 착각을 깨부쉈다. 


카게야마는 시무룩한 표정을 짓다, 뭔가 떠올랐는지 그의 옷자락을 잡고 꼭 변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말했다.


“그, 그래도 아직 배신하는 부분은 안 나왔습니다! 그 직전까지만 봤어요!”


의리를 지켰다며 뿌듯해하는 카게야마를 보고 오이카와는 실실 웃었다.


“근데 나중에 배신하긴 했잖아.”

“아…안 봤으니까…….”


딴죽을 걸며 놀리자 카게야마는 또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 곤경에 처한 후배를 구해주는 멋진 선배 이와이즈미가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아야!”

“애 그만 좀 놀려라.”


이와이즈미가 오이카와의 뒤통수에 가볍게 꿀밤을 먹이며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나이가 몇인데 아직까지 유치하게도 노냐고 핀잔을 주는 듯한 이와이즈미의 눈빛에 인간 나이 24살, 마족 나이 아직 모름, 도합 연령 미상의 오이카와는 딱 3분만 자신을 15살 사춘기 소년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3분 이상 투덜댔다간 또 잔소리를 들을 게 뻔하니까 딱 3분만. 


그는 카게야마를 붙잡고 이와쨩은 폭력적이고 토비오쨩은 바보라서 오이카와상이 고생이라는 푸념을 늘어놓으며 3분을 알차게 보내고 침낭을 둘둘 말아 짐 꾸러미 안에 넣었다.




변화 없는 초원의 풍경 속을 몇 시간이나 말없이 달리는 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최대한 조용히 푸루스까지 가야 했기에 캐러밴 때처럼 유목민들과 어울리는 것도 아니 되는 그들은 반기는 것이라곤 그저 규칙적으로 들리는 말발굽 소리와 이따금 머리 위를 지나가는 새의 긴 울음뿐이었다. 


따분한지 옆을 보고 하품하던 오이카와는 눈가를 비비다 말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무?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는데?


잘못 본 건가 싶어 눈을 감았다 다시 뜨니 한 그루였던 떨기나무가 두 그루로, 두 그루에서 네 그루로, 그게 다시 여덟 그루가 되더니 작은 관목림 수준으로 늘어났다.


“저, 저, 저기 좀 봐봐!”


오이카와는 입을 쩍 벌리고 불쑥 생겨난 해괴한 숲을 가리켰다. 기껏해야 몬스터일 거라 생각하며 심드렁하게 칼 손잡이에 손을 갖다 대던 이와이즈미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저거 설마…던전 입구인가…?”

“던전? 저게? 던전은 동굴이나 지하 하수도에 입구가 있다거나 아니면 유적지나…여하튼 뭐 그런 있어 보이거나 좀 음침한 분위기의 다가가기 힘든 장소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던전이 저렇게 움직여대면 어떡해?!”

“이공간과 연결된 던전 중에선 입구만 저렇게 옮겨 다니는 곳도 있거든.”

“왜 그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데?”

“중요한 물건 같은 걸 다른 사람들이 못 찾게 감춰두려고…?” 


오이카와는 전에 친구들이 게임 얘기를 하며 무슨 던전에서 레어템이 나왔다느니, 그 직업은 어떤 섬에 있는 던전에서 나오는 아이템이 좋다느니 떠들어대던 걸 떠올리며, 이제 확장을 멈추고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던 것마냥 천연덕스럽게 서 있는 숲을 보고 눈을 빛냈다.


“그럼 저기에서 레어템 같은 거 얻을 수 있어?”

“아마 그럴걸. 근데 아서라.”

“왜? 어쩌면 내 기억이랑 힘이 돌아올 아이템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


좋은 기회일지도 모른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는 오이카와를 보고 이와이즈미는 고개를 내저었다.


“던전에는 몬스터가 득시글대거든? 너 지금 싸울 수 있냐? 힘도 안 돌아왔는데?”

“아…….”


오이카와가 슬그머니 들어 올렸던 팔을 내렸다. 얼굴에 아쉬운 기색이 가득했다.


“이와쨩 혼자서는 못 깨?”

“니 안 다치게 돌보면서 몬스터까지 잡으라고?”

“…저, 대화중에 죄송합니다만…….”


그때까지 숲을 응시하고 있던 카게야마가 천천히 고개를 그들 쪽으로 돌리며 입을 열었다. 끼긱거리는 소리가 날 것처럼 어색하고 뻣뻣하게 굳은 움직임이었다.


“저 숲…점점 다가오는데요?”


불어오는 바람에 녹색이 짙었다. 손톱만 한 나뭇잎 하나가 바람에 밀려와 팔랑이다 이와이즈미의 안장 위로 내려앉았다. 


그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도망쳐!”


고삐를 단단히 쥐고 배를 걷어차자 말들은 콧김을 뿜으며 땅을 박차고 달리기 시작했다. 


초원에 뿌연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숲은 흙먼지를 집어삼키며 바짝 쫓아온다. 후드가 벗겨지며 머리칼이 나부끼고, 가리지 않은 코나 입안으로 모래가 들어와 따끔거렸다.


“앗…!”


모래가 들어갔는지 오이카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으며 자신도 모르게 상체를 옆으로 트는 바람에 고삐를 쥔 손이 당겨졌다. 한창 달리고 있던 말은 갑자기 고삐가 당겨지자 앞발을 들며 날뛰기 시작했다.


“잠깐 진정…!”


오이카와는 재빨리 고삐를 고쳐 잡고 흥분한 말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의 목을 쓰다듬었다. 


하지만 숲은 그들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말을 진정시킬 겨를도 없이 녹음이 덮쳐왔다.


“오이카와상!”

“오이카와!”


발밑이 훅 꺼지더니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 갔다. 




뺨을 스치는 바람은 축축하고 날카로웠다. 캄캄한 어둠이 그를 깊은 아래로 끌어당겼다. 밑으로. 더 밑으로. 


그는 다가올 충격에 대비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으윽…!”


등 뒤로 탄력 있는 근육덩어리가 느껴졌다. 운 좋게도 말 위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으나 온몸의 뼈마디가 아파왔다. 잠시 몸을 웅크리고 통증을 삭이고 있으니 어느새 몸을 일으킨 말이 주둥이로 그를 툭툭 쳤다. 오이카와는 무릎에 파묻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괜찮아? 내가 네 위로 떨어졌는데…….” 


말은 갸웃거리더니 그의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얼른 일어나라는 것 같았다.


“마계의 말들은 엄청 튼튼하구나.”


오이카와는 아직도 얼얼한 등을 손등으로 문지르며 일어나 말의 고삐를 쥐었다. 


위를 올려다봐도 칠흑 같은 어둠과 쉭쉭 거리는 기분 나쁜 바람만 불어올 뿐, 빛이라곤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저길 올라갈 수 있을까? 아니 무리다. 잡고 올라갈 벽도 없다. 그럼 출구를 찾아보는 게 좋을까? 아니지. 던전엔 몬스터들이 득시글거린다고 했으니 얌전히 구조를 기다리는 편이 낫지 않을까?


바로 곁에 있는 말이나 보일 정도로 어두운 그곳에서 잠시 고민하던 오이카와는 일단 주변을 살피기 위해 작은 불을 만들어냈다. 


그러자 본 적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의 발치의 수정이 먼저 푸른색으로 반짝이며 벽에 있는 수정을 비췄다. 벽의 수정은 빛을 받자 주홍색 빛을 뿜어낸다. 그리고 그 옆의 수정으로, 옆의 수정은 또 그 근처로. 제각기 다른 빛이 섞여 파도처럼 넘실거리고 이윽고 그의 주변은 눈부시게 밝은 하나의 빛 덩어리가 된다. 


가슴이 벅찰 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자신이 꼭 별이 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런 감상은 오래가지 못 했다. 저 멀리서부터 쿵쿵대는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빛에 놀란 몬스터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오이카와는 벽에 몸을 붙이고 불을 꺼트렸다.


어둠 저편에서 커다란 몬스터가 걸어 나왔다. 잘은 보이지 않지만 덩치가 족히 3m는 넘어 보였다. 몬스터는 머리 위로 크게 난 귀를 쫑긋거리며 두리번거렸다. 오이카와는 숨을 죽인 채 제발 몬스터가 자신을 발견하지 못 하길 기도했다.


“크르르…….”


몬스터는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아까 오이카와가 서 있던 곳의 바닥에 코를 대고 킁킁거렸다. 


제발. 제발 눈치채지 못 하게 해주세요! 긴장해서 꾹 쥐고 있는 손바닥에서 땀이 배어 나왔다. 


몬스터는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오이카와는 숨죽인 채로 마른침을 삼켰다. 침이 넘어가는 목구멍이 따가웠다.


몬스터가 머리를 쳐들었다. 드디어 포기한 모양이다. 다행이다. 오이카와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몬스터는 코가 피곤한지 킁킁대더니 등을 벅벅 긁었다. 그러다 등에 맨 칼인지 뭔지가 방해되는지 그것을 번쩍 들어 땅에 꽂았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오이카와는 가까스로 입을 막으며 주저앉았다. 


그러나 말은 아니었다. 말은 화들짝 놀라 무서운 기세로 달려 나갔다. 


쇠로 된 판자가 돌바닥과 부딪히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우우…우우우-!”


그 소리를 들은 몬스터는 천장을 향해 목을 길게 빼고 긴 울음소리를 냈다. 늑대들이 동료를 부를 때 내는 소리와 비슷했다. 


몬스터가 쿵쾅거리며 말을 쫓아가자 오이카와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나 벽을 짚었다. 곧 저 녀석이 부른 동료들이 이쪽으로 올게 분명했다. 도망쳐야 했다. 


그는 말이 도망친 것과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 나가기 시작했다.




*    *    *




“입구에서부터 격렬하게 환영해주는구만!”


벌써 일곱 마리째, 코볼트의 가슴팍에 칼을 밀어 넣으며 이와이즈미가 신경질을 냈다. 칼날을 비틀어 빼자 코볼트가 쓰러지며 먼지가 피어올랐다.


“오이카와상은 무사할까요?”


카게야마는 코볼트의 시체에서 화살을 빼낸 뒤, 초조한 손길로 피가 묻은 화살촉을 무명천에 닦았다.


“시체는 없었으니 무사하겠지. 악운이 강한 녀석이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와이즈미도 불안한건 마찬가지였는지 팔찌를 흔드는 손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작은 불빛들이 그들 주위를 둥둥 떠다니자 그 빛을 반사시키는 수정들로 주위가 환해졌다. 그 찬란한 빛 속에 서 있으니 마음속에 짙게 낀 불안도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오이카와상도 이걸 봤을까요?”


카게야마의 감탄 섞인 물음에 이와이즈미는 수정의 매끈한 표면을 훑으며 말했다.


“글쎄다. 그건 직접 물어봐야겠는데.”


그러려면 얼른 찾아야겠지. 이와이즈미와 카게야마는 어둠 속으로 한 걸음 크게 내딛었다.




*   *   *




오이카와는 숨을 참은 채 몬스터가 그를 지나치길 기다렸다. 


몬스터는 고기 썩은 내를 풍기며 멀어졌다. 그는 참고 있던 숨을 들이마시며 다시 벽에 오른손을 가져갔다.


던전 내부는 미로처럼 복잡했다. 출구는 대체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 그는 불안을 떨치기 위해 벽을 더듬고 있는 손에 힘을 주었다. 괜찮아. 곧 출구가 나올 거야. 오른손으로 벽을 짚으며 가고 있으니까. 


‘미로에서 오른손으로 벽을 짚고 따라가다 보면 반드시 출구에 도착한다.’는 오른손의 법칙을 속으로 되뇌며 오이카와는 걷고 또 걸었다.




어두운 던전 안의 몬스터들은 시각이 퇴화했는지 그가 바로 눈앞에 있어도 알아차리지 못 했지만, 대신 청각과 후각이 예민해 그가 조금만 큰 소리를 내도 코를 벌름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럴 때면 오이카와는 입을 틀어막고 숨소리를 죽인 채 몬스터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등이 땀으로 축축했다. 그는 혹시 땀 냄새가 나진 않는지 옷을 들어 냄새를 맡아보았다. 희미하지만 짠 내가 났다. 


들키지 않아야 할 텐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어둠 속을 걷고 있는데도 감각들이 아득히 멀어져 가는 느낌이 들었다. 


또 몬스터가 다가오고 있었다. 온몸의 신경들이 경고를 보내고 있었지만 정신은 흐릿해져갔다. 벽에 기댄 채 위협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그는 또 걸어야 했다. 아직 출구를 찾지 못 했으므로. 




걸으면 걸을수록 몸은 가라앉고 정신은 붕 뜨는 것 같다. 꿈. 꿈을 꿀 때와 비슷했다. 


오이카와는 어느새 자신이 딱딱한 던전의 돌바닥이 아니라 붉은 카펫 위를 걷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놀라지 않고 카펫 위를 가로질러갔다. 그게 당연하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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